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Posted 2010. 6. 6. 04:38


비빔밥을 해먹었다.
비빔밥이랄 것도 없는게,  집에 있는게 계란이랑 베이컨밖에 없어서 계란 후라이를 반숙으로 하고, 베이컨을 구워 잘게 자른 후 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김이랑 일회용 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알버타 대학 인문 도서관에 다녀왔다. 인문 도서관이라는데, 어째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보다 더 크고 책도 훨씬 많은데 사람은 거의 없어서 괜히 짜증났다. 이 나라가 다 그렇다. 한국보다 훨씬 크고 자원도 많은데 사람은 적다. 꿈의 나라다. 일자리만 찾는다면. ㅎㅎ
 

* Beauty

지금은 민들레가 지는 시기다. 노란 꽃이 공원 곳곳에 피어있는 게 참 예뻐서 꽃이 지고 씨앗이 피면 하얗게 더욱 예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광경이 예쁘지만은 않다. 솔직히 말해 흉하다. 대머리 백발의 노인을 연상케한다. 하얗게 져가는 민들레를 보며 내가 아직 노랗게 예쁘고 젊음을 상기하고는 안도했다. 늙기 싫다. 늙어도 예쁘게 늙고 싶다. 하지만 이딴 생각을 늙어서도 갖고 있으면 꽤나 흉할 것임을 알고 있다.

요즘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고 있다. 맨날 읽다가 다섯장도 못읽고 졸지만(원서 읽다가 다섯장도 못읽고 졸아서 바꿨는데 여전하다.) 곰브리치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내가 막연하게 관념으로만 갖고 있는 것을 적확하게 문장으로 푼다.


   
 
 

뒤러(Albrecht Durer),
[어머니의 초상], 1514년.



독일의 유명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도 루벤스가 자기의 포동포동한 아들에게 가졌던 만큼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어머니를 그렸을 게 틀림없다.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니를 진실되게 그린 이 습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줄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뒤러의 이 그림은 위대한 진실성을 담고 있는 명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느낀 반감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 Queer

캐나다에 와서 무척 놀랐던게 게이가 많아서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모리스]여서 더욱 감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호주에 있을 때 게이퍼레이드에 갔다가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는데, 다시금 여기서 퀴어 피플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물론 성적 취향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전혀 없다. 나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게이친구를 갖고 싶단 로망을 갖고 있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처럼 게이가 이민호처럼 생겨야 하고, 직업도 꽤나 괜츈해야 하고 게다가 알고보니 게이가 아니었고!!!!! 따위의 로망은 아니다. 그래도 과도기의 한국에서 '잘생기고 능력있는' 게이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긴 하겠다.) 하지만 요즘 계속해서 머리에 맴도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 말고 딱 봐서 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덥썩 움켜쥐고 싶은 단아한 허리라인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걸을 땐 여느 여자들보다도 예쁘게 걷는다. 걸음새 만큼이나 다리도 예쁘다. 정말 타고났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들이 불행한 어린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행운이었을까? 요즘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집착하고 있느냐면, 어제 밤에는 막내동생이 커밍아웃하는 꿈까지 꿨다.

아무리 내가 열린 마음이라고 해도 내 가족이 퀴어라면.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 나는 그들을 동정하는 것일 뿐 사랑하지는 않는 것이 된다. 동정심을 하나의 악덕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분투하고 있다. 막내동생이 정말로 커밍아웃 하더라도 그를 두 손들고 지지할 수 있도록. (뭐 아직까진 그럴 기미는 없다만;)

허나 사람을 사랑하는 건 아직까지 내겐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