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직관

Posted 2010. 6. 8. 08:23


난 분석력이 영 꽝이다. '분석'이라는 단어의 느낌도 싫다. 분식이라면 몰라도.

그런데 최근 놀랍게도 '제 분석 좀 그만 하세요.'란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후에도 계속해서 분석하는 예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실로 묘한 일이었다. 사람을 분석하다니! 내가! 사실은 말이 분석이지, 아마 직관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는 사람의 정 반대 지점에 있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걸 그냥 말로 뱉어버리는 직관하는 타입에 가깝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서 발견한 날카로움, 연약함, 꼬리를 반짝 세운 고양이에게서 내뿜어지는 것만 같은 위협, 그러나 사실은 공포,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etc. 이런 것들은 그의 태도나 언행을 내가 기억하고 데이터로 저장해두었다가 분석한 것이 아니라 내 촉각이 그것을 감지한 것일 뿐일테다.

나는 보통 내가 상대방에게 느낀 것을 곧바로 말해버리고 마는데 이것은 고쳐야만 하지만 잘 안되는 중증이다. 지인은 내게 '니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를 생각하라.'고 조언해주었지만 이 조언은 언제나 일이 모두 끝난 후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번에도 역시 헤어져 집에 온 후에야 사과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나를 특별히 여기고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워낙에 '좋아하는 캐릭터' 찾아내기를 즐겨하기에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할 여건이 되지도 않았던건지 최근에서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더 최근에는 그런 사람이 꽤나 많았다는 걸 알아버렸다. 바로 윗 문단에서 조언을 해준 지인은 다시 '니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관계없이 너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만나도 충분하다.'고 다시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이 조언 역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 전에 없이 소심해져버리는 나를 북돋아주지는 않는다.

분석은 괜찮지만 직관은 위험하다. 덜 다듬어져있어서 거칠고, 그래서 상처주기도 쉽다. 때론 나의 직관이 절묘해서 상대방을 구원해줄 때도 있지만 때론 아픈 곳을 곧바로 찔러서 절망케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더냐. 아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연약하더라. 니 좋아하는 친구를 많이 곁에 두려면 본능에 충실한게 옳다고 여기지 말고 조금 더 이성적인 인간에 근접해 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