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나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고는 어쩐지 기운이 쫙 빠져버려서 나가기를 포기하고는 옷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잠을 자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학교에 다니는 꿈을 꿨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친절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교실 곳곳에서 발견하며 흥분했다. 짝꿍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짝사랑 했던 친구였고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잘생겼었다. 이 모든 종류의 설레임에는 꿈 속에서는 아직 알지조차 못하는, 내가 미래에 좋아하게 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행복감도 은연중에 섞여 있었다. 이것은 무척 행복한 일인데, 요즘처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때에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학창시절 이후로 만난 또다른 좋은 사람들이 '존재함'을 무의식의 나는 잘 알고 있으니 꿈 속에서 느낀 행복감은 거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내가 좋아하는 친구 중의 하나는 자기 소개 시간에 신데렐라 언니의 ost 중 한 곡을 불렀다. '불러본다.' 였던가. 꿈에서 깨서는 이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문근영의 눈물에, 그리고 아름다운 음색에, 애틋한 [신데렐라 언니]의 감정선에 나도 덩달아 눈물짓고 말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보던 단 하나의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였다. 이 드라마가 내 마음을 왜그렇게 건드렸던지. 걷잡을 수 없이 드라마에 중독되어가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언제나 그랬듯이 왜 좋은지에 대해 분석을 시도 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좋아하며 봤던 드라마로는 하지원이 나온 [황진이]가 있다. 황진이도 참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봤었는데 은조와 황진이에는 공통점이 있더라. 둘다 자기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을만큼 연약해서 언제나 매서운 눈초리와 독설을 자기방어 기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여리고 상처받은 모습이 무척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그녀들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그녀들의 독한 모습은 성격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을 하는 태도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은조가 주조를 일으키려 하는 모습, 황진이의 춤과 음악에 대해 완벽해지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 이것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천하태평의 성격을 가진 내게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그 주변부에 가깝다. 어리광부리고 틈만 나면 엉엉 울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할 줄아는게 발레밖에 없으면서도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맨날 넘어지기만 하는 서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동족혐오의 기질 덕에 서우의 캐릭터에는 전혀 몰입할 수 없고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진 은조와 황진이에게 거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좀 숨기고 싶다.
아프더라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숨기고 싶다.
열정적으로 일 하고 싶다.

친구는 내가 '이 음식이 맛 없을 줄 알았는데 맛있네' 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꿰뚫는다. 이것은 그 친구의 통찰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내 표정이 그만큼 모든걸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은조처럼 고통을 온전히 내것으로 삭힐 수 있길 바란다. 팍 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내게 고통은.

지금 이곳은 온도가 영하에 가깝고 계속해서 흐리고 비가 온다.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잘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고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서 죽은듯이 잠만 자고 게임하고 밥을 축낸다.

왜 동경하는 대상의 발끝에나마 미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왜 평소의 소망대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주변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지. 나의 의지라는 건 왜이리도 빈약한지.


'Pa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석과 직관  (0) 2010.06.08
고통과 환희  (0) 2010.05.31
저기에 엘레베이터 타워가 보인다.  (0) 2010.05.01
밥벌이에 신경쓰지 않는 삶을 산다면  (4) 2010.03.23
사진과 관련 없는 쌩뚱맞은 글.  (0)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