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위
Posted 2009. 11. 16. 10:49"아버지와 고모 사이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기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
까지 읽었을 때 고속버스의 조명이 꺼졌다.
처음으로 내게 책을 읽어준 남자에게 보답하고자 속으로 몇번이나 되뇌이던 구절을 읽어 주던 중이었는데, 가로등 불빛에도 의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서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초속 5cm]를 봤냐는 질문에 난 찬사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 애니메이션의 화두인 벚꽃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린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가로등의 빛에 반사되어 벚꽃처럼, 거짓말처럼 예쁘게 내리는 눈을 보며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눈이 '내린다'는 것은 조금 잘못된 단어 선택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은 앞에서 뒤로 흐르거나 분수처럼 뿜어져나와 흩어지는데 앞으로 눈이 내린다는 말을 쓰지 않고 눈이 흐른다, 눈이 솟아 나온다 라는 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잠시 고민했다.
- 첫눈에 얽힌 즐거운 추억이 있나요?
라고 내가 묻자 그는
- 응. 오늘이에요,
라 답했다.
나는 우리가 마치 오래된 연인이었던 것처럼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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