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와 무한도전

Posted 2009. 11. 24. 11:29

* 자칫 불쾌해질 수도 있는 개인적 의견정리/뒷다마임을 미리 경고합니다.

영국에는 'Big Brothe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예전에, 한 3년 전쯤에 호주에서 보면서 진짜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있나 하면서 보다 말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영국에서도 방영하는가보다. 선남선녀 몇명을 한데 모아놓고 투표를 해서 한주에 한명씩 탈락시키는 건데,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것들을 여과없이, 빅브라더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이런 장면. 


  Dale & Jen in bed 

그러니까 난 스물 세살에 난생 처음으로 일반인이 TV에 나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 속삭이고, 목욕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줄 알았는데 이 문화적 충격에 한동안 빅브라더 얘기만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재밌다는 친구들을 약간 머리 빈 애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잊고있었던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 '빅브라더'에 준하는 저질프로그램으로 '무한도전'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무빠다. 내가 정기적으로 보는 한국 TV프로그램은 무한도전 단 하나이고,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무한도전'만이 내 친구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나의 시선이 편파적일 수 있다는 건 일단 인정한다. 그런데 자극적인 사생활 엿보기 프로그램이 어째서 '무한도전'과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있는건지? 뭐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 외국물 먹었다고 매도당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을 지껄여두었기에 내가 더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거기까지 가서 '무한도전'보고, 그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는 것도 한심하고 인종차별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한도전'을 부끄러워하는 게 황당했다. 영어공부 하러 가서, 한국도 싫다면서, 왜 자꾸 찾아다 보고 있는건가?

나 역시도 1년 정도 외국에 있으면서 동양인을 대하는 서구인들의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의기소침한 피해의식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조금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본다. 영어 배우러 왔는데, 좀 못하면 어때? 이런거. 실제로 나만 당당하면 조금 더 말 천천히 해주고, 더 친절한 외국인도 많았다.
그러니 그들 앞에서 문명인(? 문명인이라고 굳이 말한 건 그 블로거가 무한도전 멤버들을 무슨 밥오/몽총이/미개인마냥 취급했기 때문인데 단어 선택을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으로선 잘 안된다)인 척, 혹은 영어잘하는 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영어 못하는게 죄도 아니고, 일례로 무도에 출연한 뉴요커도 " I don't speak Korean, either" 이 비슷한 말 했지 않나? 서구사회에서도 오히려 인종차별주의자를 적대시하는 게 대세인데, 글로벌 시대에 그런 덜떨어진 인종차별주의자들 눈치를 봐야하나? 무도 멤버들은 본질적으로 개그맨들이고 소소하고 일상적 요소 하나까지 캐치해서 개그로 만들어야 한다는 직업정신이 누구보다도 투철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영어 못하는 걸 오히려 하나의 개그 요소로 사용한 것인데, 그게 그렇게 쪽팔린가? 내가 볼 땐 별 무시를 당한 것 처럼 보이지도 않던데. 오히려 이것갖고 부끄러워하고 자기비하하는 게 더 불쌍해보인다. 

외국에 몇개월 살면서 가진거라곤 자기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동양인이라는 피해의식 뿐이라니, ㅉㅉㅉ 나라고 한국의 시민의식, 한국의 문화를 무작정 다 찬양하는 애국자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까운데 이런 피해의식, 사대주의에 휩싸인 어학연수자들을 볼 때마다 한국의 미래가 더 암담해보인다.

이 녀자 하는 말이 가관이어서 댓글 달아놓긴 했는데 그 댓댓글이 더 가관이라, 열받아서 여기서 주저리;; 이런 얘기 그런 사람과 더 해봤자 어차피 논쟁은 산으로 가고 서로 상처만 입고 끝날게 뻔해보여서 여기서 풀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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