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마저도 귀찮다면.
Posted 2009. 12. 7. 14:52 바쁠수록 무기력해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야심차고 희망가득한 계획 때문이었는데, 문득 그 마저도 모두 귀찮아져버렸다. 여행도, 술도, 친구도, 블로그질도, 영화도, 책도, 미래도 모두 부질없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렵고 막연하다. 왜이래? [우부메의 여름] 때문인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딱히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였다. 학교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수차례 서류탈락으로 인해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였고, '평생 먹을 마음의 양식을 쌓았으니 괜찮다!'고 성공지향의 대표주자 아버지께 당당히 소리를 지르던 나는 저 깊숙히 숨어버려 경영학과에 갈걸- 후회도 설핏 들 때쯤 이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됐고, 단지 2달 여행다니며 외국애들이랑만 놀며 겨우겨우 회복한 영어덕분에 합격했다. 연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택도 없이 적었지만 주5일에 야근도 없고,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국장도 비정규직인 체제라 별다른 차별대우가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미래인터넷'이라는 과제명과 국제 학술행사를 대부분 맡을 것이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교수들이랑 일하며 그들의 특권의식에 질리기도 했고, 서울대,북경대 박사들과 일하며 엘리트에 대한 나쁜 편견을 버리기도 했고, 완전체 여자를 온몸으로 겪으며 괴로워하기도 했고, 잦은 제주도 출장에 이젠 제주도 따위..;; 가 되어버렸고, 호텔 부페 따위, 먹기도 지겹다. 잠자리나 입맛이 고급화되어 배낭여행은 이제 꿈도 못꾸게 됐다.
가장 큰 수확은 나는 회사에 부적합한 인간형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길을 모색하고 계획하는 중인데, 이 모든게 지겨워져버렸다는 건 무척 당황스럽다. 저물어가는 2009년마냥 에너지가 소진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내게도 충만한 2010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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