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

Posted 2010. 12. 16. 14:58

이미 짐작을 하신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일기를 적거나 편지를 쓰거나 그런 것에 자주 매달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바깥 세계에서 자기 욕망의 실현에 실패를 하는 경향이 많은 쪽이기 쉽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행위가 보다 소극적이고 내향적인데 비해 편지를 쓰는 사람 쪽이 조금은 더 적극적이고 외부 지향적이라는 차이는 있을망정, 어느 쪽이나 똑같이 바깥 세계에 대한 공통의 원망을 지니게 됨으로써, 그 바깥 세계가 자기의 생각과 주장에 거꾸로 굴복해오기를 갈망할 뿐 아니라 궁극에 가서는 그것의 풍속이나 질서까지도 자기 식으로 온통 뒤바꿔놓기를 바라는 내밀한 욕망을 지니게 된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질서에는 자신이 굴복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이번에는 그 세계가 거꾸로 자신에게 굴복해올 수 밖에 없도록, 그 세계 자체를 아예 자기 식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을 어떤 새로운 질서를 음모하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좀 더 문학적인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자기의 삶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종의 복수심이지요.

- 이청준
친구가 인용해 둔 글을 가져왔다.
정말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면 쓸 수록 내 안에 갇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한 2박 3일 동안 내내 술을 마시면서 수다떨고 싶다고 했다. 요즘엔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에피소드 위주의 대화만 간간히 하는 우리는 대학시절엔 술을 마시고 공부를 하고 길을 오가며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듣는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단편적인 대화 토막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시간들은 한데 뒤섞여 뭉퉁그려져 하나의 덩어리로 남아 있다. 졸업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도 그 총체적 시간들을 다시 보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많이 슬프고 아쉬웠었는데 그게 현실이 된 지금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아쉽다.

특히나 그 시간이 그리워져 버린 건 며칠 전 친구네 놀러가서 잤는데 누워서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캐나다 오고 나서 이렇게까지 내 얘길 많이 한 친구가 없었는데, 그리고 그게 단 하나 캐나다 생활의 부족한 점이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그런 친구를 만나니까 오히려 옛날 생각이 나버렸다.

대기가 눈으로 가득 차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 보일 정도로 눈이 많이, 계속해서 내린다. 아침에 일하러 가는데 바람을 마주하고 걸어서 눈도 못뜨고 걸었다. 그리고 겨우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인 담배는 너무 맛이 없었고, 숨이 차서 반도 못피우고 버려버렸다. 담배도 맛없으니 살 맛도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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