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 떠다니는_ 박쥐

Posted 2009. 12. 18. 13:31
박쥐
감독 박찬욱 (2009 / 한국)
출연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김해숙
상세보기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볼 때 좋았다 안좋았다의 기준이 '치유'가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작품성과 관련해서 구원이나 치료에 집착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안그래도 비참한 현실은 더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며 왜곡시키는 작품들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미술품의 경우에는 아무리 추해도 그게 고정관념이다, 싶어서 더 신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문학이나 영화같은 장르는 아무래도 인간의 삶을 고대로 그려내는 장르이다 보니 영화에서 보지 않아도 지긋지긋하다. 당신들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난 충분히 힘들단 말이다.

이렇게 불쾌해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박찬욱감독의 영화들과 강도하의 [큐브릭]이었는데, 그냥 내 취향이랑 달라서 별로인것이지 딱히 작품성을 갖고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이런 저런 리뷰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나같은 문외한은 찍소리도 못할만큼 박학다식한 분들께서 해석한 글을 보면 참 꿈보다 해석인가 싶다.  

이상하게도 박찬욱감독의 영화를 자꾸 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의에 관계없이 보게 되는데 그만큼 감독이 유명해서인가 싶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시리즈나 배트맨 시리즈처럼. 
이번에 본 [박쥐]도 차마 거절을 잘 못하는 나를 어찌 잘 알아보신 분께서 덜컥 예매를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봤다. 영화가 끝난 후에 내가 딱잘라 별로였어요- 라고 하자 죄인취급한다며 날 몰아붙인다. 흥, 보고 나니 더 우울한걸 어째?! 

김옥빈의 캐릭터가 참 특이했다.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 성격이 왔다갔다 하니 종잡을 수가 없다.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너무 황당하니깐 그냥 이렇게 살 수도 있는거구나, 하면서 봤다. 하긴 이 영화에서 설득력 있는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알 수 없는 중국풍의 분위기와 신하균은 암이라더니 기도 받고 나은건가? 뽕짝과 클래식의 어이없는 조합은 무엇이며 둘의 죽음은 엄마에게 복수인가 선물인가? 우리 감독님은 [사이보그...]이후로 흰색에 집착하나? 끔찍한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은 뭘까- 잔혹함에 길들여져 버린걸까.. 그냥 야하니까 좋았다는 이 남자는 또 뭔가.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도덕성을 믿지 않는 만큼, 인간의 악한면도 별로 믿고 싶지 않다.
친구를 죽이고 그녀를 차지하고 싶은 본능을 억지로 제어하든, 그녀의 꼬심에 넘어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죽여버리든, 그리고나서 그녀때문이라고 착한척을 하든, 별로 절박하지 않아보인다. 

몽유병이라며 맨발로 밤거리를 뛰어다니든(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사실은) 신부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든, 엄마 미안하다며 울고불고 하든말든, 맛있다며 여럿 죽여서 죄책감 없이 피를 마시든, 매력적이지도 않다. 예쁘긴 하더라만;

영화는 그닥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주기는 커녕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지 않는다. 
봐라, 이게 너희들이 사는 세상이다. 라고 잔혹하게 피를 뿌려가며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이런 세상을 굳이 뉴스를 보지 않아도 상사에게 성희롱 당하는 친구, 밤새서 일하지만 누군가의 월급의 반도 못받는 친구, 사기당해서 울고불고 경찰에 신고해도 들은척도 안한다고 우울해하는 친구들 얘기만 들어도 우리는 다 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냥 눈돌리고 피해버리고 싶은 걸 곧이 곧대로 보라고 강요한다. 
만약 감독이 유명하지 않고, 매니아 층만 확보한 상태였다면 난 이렇게 불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이제 다수의 관객에게 노출된 상태이고 이러한 강요는 사실 아직 정신이 성숙하지 못했거나 약해빠진(미성년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상당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불쾌한 것이다. 

예전에 여러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달콤한 독에 관해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박쥐]는 그 개념이 아니다. 안그래도 쓴 맛을 이리저리 고약한 것을 섞어서 뱉어버리고 싶게 만든다. 근데 이게 끈적끈적해서 잘 안뱉어지니까 문제다. 난 불편한 영화를 무작정 폄하 하는게 아니라구요.

아,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화면을 넘어서서 최악을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 상세보기


외국에서의 받아봤던 인종차별이란,  
성적으로 노리개감의 목표물이 된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가 외국에선 좀 낮고, 호기심이 생긴단 걸 알기도 하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위험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섹스하자고 달겨들기보단 좀 더 신사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시아계 남자들의 경우 좀 더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에서의 폭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에드워드노튼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말도안되는 인종차별이론이라도 진짜 설득력있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흑인들, 아시아인들이 굴러들어와서 백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빌어먹을 평등정책때문에, 능력있어서가 아니라 흑인이기 때문에 원래 백인들의 것이었던 일자리를 얻고 더 나은 권리를 획득한다. 백인들이 낸 세금은 이주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된다. 

아, 사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 또한 백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빈곤층이나 외국인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때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덕을 보는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스킨헤드들의 이론과 분노에 쉽사리 휩쓸릴 뻔 했다. 사실 물밀듯 이주해오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위한답시고 인권이나, 사랑,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이런 사상이 무슨 상관이야, 일단 내가 손해를 보는데!  

그러나 영화 중반부부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당당하게,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살해하고 감옥으로 들어간 에드워드노튼은 소수의 입장에 선다. 감옥에선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월등하다. 그 곳에서 말 한마디 섞고싶지 않았던 함께 일하는 흑인과 소통하게 되고, 그가 고작 TV를 훔친 죄로 6년형을 구형받았단 얘기를 듣고, 순진하게 백인우월주의를 외치다가 믿었던 백인집단에게 강간당하며 그 동안 그를 지탱하고 있던 온 세계가 흔들리게된다.   

결국 그를 보호해주던 백인집단에서 벗어나 흑인집단의 보복성 린치를 기다리지만 그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출소하여 더 막강해진 스킨헤드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추앙하던 동생도 그 구렁텅이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말해졌던 것 처럼 그들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될 수도 있고, 백인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기득권층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쏟아냈을 때 댓가는 꼭 치루어야 한다. 물론 치루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살자, 그 분노의 창 끝이 나를 향했을 때를 두려워하며- 


* 꽃남이 짤방   

원숭이

Posted 2009. 12. 17. 14:41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과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으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아마존의 '원숭이'는 무섭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다는 것.
책에서 읽은 원숭이들의 포획물들(이 물건들 때문에 원숭이들에게 죽임을 당한 양키들에게 건진) 을 읽어 보며, 카메라를 갖고 주렁주렁한 악세서리를 걸고 이 친구에게로 다가가서 찍을 때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는지 실감했다. 책속의 양키떼들을 비웃을 것도 없이 내 무식이 용감이다. ㄷㄷㄷ

1박 2일로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이라지만, 공항가는 거부터 기다리는 거 뭐 이래저래 따져보니 숙소에서 집까지 5시간은 걸린 것 같다;; 괜히 면세점에서 충동구매로 화장품을 지르며 자본에 탐닉하는 내 자신을 새삼 재발견했다.
이번엔 섭지코지에 있는 리조트였는데 바다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녀들이었다. 제주가 남쪽나라이긴 하지만 칼바람때문에 서울 못지않게 추웠었는데 그 추위에 바다로 잠수하며 숨비소리를 내는 그녀들을 보니, 난 자연산 생굴을 사먹고 싶어졌다. (이렇게라도 그녀들의 삶에 도움이;;;;; 쿨럭;;) 근데 팔지 않더라; 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중에 하나가 생굴이었는데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ㅇ_ㅇ

너무 춥다. 오늘은 치마를 입었는데, 스타킹 아래의 피부가 찢어질 것 같다. 
그래도 난 추운게 좋다. 괜히 흥분되고 두근두근거린다. 

'Pa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의 노예  (2) 2009.12.23
워킹홀리데이 1차 합격  (8) 2009.12.22
잡담  (4) 2009.12.11
향일암  (4) 2009.12.10
로망마저도 귀찮다면.  (6) 2009.12.07
« PREV : 1 :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 33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