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오브 시베리아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 (1998 / 프랑스, 홍콩)
출연 올렉 멘쉬코프, 줄리아 오몬드, 리차드 해리스, 다니엘 올브리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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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상의 반복되는 패턴에 작은 전환점이 하나 생겼는데, 이런 때일 수록 격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이야기가 땡기는 법이다. 무료할 때 그런 영화를 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지금같을 때 이런 미친 로맨스는 매우 무척 굉장히 최고로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더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하며 [러브오브 시베리아]감상을 마쳤다. 

밤새 이런 비극은 어디에서 오느냐, 난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느냐에 사로잡혀있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일까,
아니면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가 더 자기 자신의 사랑에 자신감이 있느냐의 문제일까,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여 과거현재미래를 다 팽개치고싶었던 적이 한두번 있었다. 그래서 난 안드레이의 순수한 감성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의 난 아마 감당못할 것이다.어린 난 오만하지만 자신감은 없기에- 

제인에게 청혼하러 온 대위를 대신하여 청혼장을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던 안드레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고 만다. 그 때 제인은 특유의 능글맞음으로 그 상황을 겨우 넘기지만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한다.
"Do you at least understand what that boy did here today, what he has done to himself?" 

난 꼭 속으로만 불타고, 겉으로는 능글능글 비즈니스에 충실하는 제인이 미웠지만 사실 그녀는 나와 다르지 않다. 거의 비슷하다. 날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의 열정을 즐기는 것 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나 사실 그 청년이 날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한다는 속마음은 숨길수밖에 없다. 물론 이게 잘 숨겨지지는 않는 종류의 감정이지만, 비정한 상황은 보이는대로만 생각하게끔 만든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확신보다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온 전신을 휘감게 되니까.  

결말은 아찔하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10년간을 그를 생각하며 그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단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그는 적어도 그 안에서 행복했어야 했다! 
여자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20분동안 10여년의 격정을 다 지워내지만 남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좇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는 과거현재미래를 다 버리고 그녀를 쫓아갈 힘이 없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추위, 눈, 보드카, 군인들의 오만한 눈빛과 젊음, 사랑과 결투. 하얗게 불타는 순수함.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건 범죄다. 

2009.03.14 작성

(뭐야, 화이트데이에 이런 영화 보고 이런 리뷰 작성하고 앉아있었던거냐-_-)


주말에 안면도에 다녀왔다. 무려 세시간 반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데 허리도 아프고 자도자도 도착을 안해서, 눈을 떴는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심심하고 지겨워서 어쩔 줄을 모르던 우리는 내 아이팟 구경을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며칠 전에 급 땡겨서 다운 받아 두었던 [미녀와야수]를 클릭하게 되어 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나이 들어서도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란다. 나 말고도 있구나- 

이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 나같은 외모지상주의인 애가 볼 때, 마지막에 벨이 야수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 I love you..흑흑 " 이럴 땐 정말 감동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런 짐승같은 외모의 야수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니, 이것은 정말 사랑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경이롭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야수가 변한 왕자의 모습이 벨이 그토록 혐오하던 개스톤의 외양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든것... 정말로 그녀에게 외모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다 알면서도, 매번 야수가 어떻게 생긴 왕자로 변할지 두근두근 기대를 하면서 보는데.. 별로 멋지지 않아서 정말 매번 볼 때마다!! 실망한다. 그런 근육빵빵 몸매와 남성다운 턱라인은 내스타일이 아니야. 외모지상주의여봤자,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의아해하기도 하는 외모의 남성을 추구하는 것 같다. ㅋㅋ 

어렸을 때 보고 지금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차이점은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다. 

개스톤을 쫓아다니는 난장이같은 남자가 있는데, 개스톤과 마을사람들은 그를 무지하게 괴롭힌다. 집단폭력은 물론이고, 추운 겨울에 눈사람이 될 정도로 몇시간이고 세워두고는 벨을 감시하게 한다. 손과 얼굴이 푸르딩딩하더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스톤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비굴하다.
어쩌면 어린이(혹은 어른)들은 내가 힘만 세다면, 약한 이들을 이렇게 마음껏 괴롭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무서운 무의식의 세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참 예뻐서 웃음이 났다. 제일 예뻤던 것은 마지막에 그들이 춤추는 장면을 스테인글라스화한 것이었는데, 소장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근나근한 벨의 목소리- 따라할테다 ㅎㅎ

왜 요즘들어 미녀와 야수를 보고 싶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림책도 있었고, 퍼즐도 있었다. 아마 그녀를 닮은 인형도- 까먹고 있었지만 미녀와 야수가 나의 favorite 이었던듯. 아직도 자꾸 쫓기고,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는데 계속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보다. 언제쯤 어른이 될라나요?

2009.02.09 작성

로망마저도 귀찮다면.

Posted 2009. 12. 7. 14:52

 바쁠수록 무기력해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야심차고 희망가득한 계획 때문이었는데, 문득 그 마저도 모두 귀찮아져버렸다. 여행도, 술도, 친구도, 블로그질도, 영화도, 책도, 미래도 모두 부질없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렵고 막연하다. 왜이래? [우부메의 여름] 때문인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딱히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였다. 학교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수차례 서류탈락으로 인해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였고, '평생 먹을 마음의 양식을 쌓았으니 괜찮다!'고 성공지향의 대표주자 아버지께 당당히 소리를 지르던 나는 저 깊숙히 숨어버려 경영학과에 갈걸- 후회도 설핏 들 때쯤 이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됐고, 단지 2달 여행다니며 외국애들이랑만 놀며 겨우겨우 회복한 영어덕분에 합격했다. 연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택도 없이 적었지만 주5일에 야근도 없고,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국장도 비정규직인 체제라 별다른 차별대우가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미래인터넷'이라는 과제명과 국제 학술행사를 대부분 맡을 것이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교수들이랑 일하며 그들의 특권의식에 질리기도 했고, 서울대,북경대 박사들과 일하며 엘리트에 대한 나쁜 편견을 버리기도 했고, 완전체 여자를 온몸으로 겪으며 괴로워하기도 했고, 잦은 제주도 출장에 이젠 제주도 따위..;; 가 되어버렸고, 호텔 부페 따위, 먹기도 지겹다. 잠자리나 입맛이 고급화되어 배낭여행은 이제 꿈도 못꾸게 됐다.

 가장 큰 수확은 나는 회사에 부적합한 인간형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길을 모색하고 계획하는 중인데, 이 모든게 지겨워져버렸다는 건 무척 당황스럽다. 저물어가는 2009년마냥 에너지가 소진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내게도 충만한 2010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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