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내 인생의 초점은 인간관계에 맞춰져 있는 것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는 이곳엔 잘 안오게 되더라. 웃긴게, 오가는 사람이 없는 이곳을 창조한 것도 나인데. ㅎㅎㅎ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허세부리는 나의 모습이다.

나 자신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의 나라는 걸 인정 못하고

자꾸 옛날엔 어땠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네, 돈을 얼마를 모았네, 영어를 얼마나 하네, 앞으로는 어떻게 할거네, 학교는 어디를 나왔네, 내가 사실은 굉장히 지적인 사람입네(실제로 이런 말을 하진 않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언제나 갖고 있다;;) 하며 지껄이는 허세부리는 내 모습을 문득 발견할 때는 자기혐오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아, 진심 최악이다.

조금 더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나란 인간은 떠받들어 주는 것에만 익숙해서 만약 옛날 옛적 왕에 비유한다면 간신들의 아첨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충신을 참수하는 그런 왕이 아니었을까 ㅋㅋㅋ

처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나이가 어려도 배울 것이 분명 많을 것이므로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존대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것이고, 이것은 무척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자부했다.

허나...

잔소리꾼 어린이는 정말 싫다......................

어린이에게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 이렇게 더러울 줄이야!!! 허세덩어리인 내가 이걸 어떻게 참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 돈이 몇푼이든, 돈벌이는 모두 지겹고 힘들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질량은 저울에 재보면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과 부모님께는 내가 무척 행복하고, 일이 재미있고, 여유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늘어나서 좋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고 있다. 참 부끄럽게도. 그렇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에는 투덜투덜 투덜이스머프 이미지가 될까봐 싫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시 목적은 '허세'에 있다. ㅎㅎㅎㅎㅎㅎㅎ



개인적으로 귀족의 생활을 동경하는데 (맨날 하는 품위 드립 참조)
내가 일하는 동네는 부자들이 많은 동네다. 유전미인이라고.. 손님들 중에는 스튜어디스들도 많고, 예쁜 아줌마들도 많고, 이쁜 외국인들도많다. 모피 입은 아줌마들과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지껄이는 초딩들.. 그 대화를 모두 받아주는 수준의 부모들.

친구들이 시집 잘 가는 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그것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비웃을 망정 조금이라도 내 목표를 비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본으로부터 비롯한 그들의 품위 있는 생활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은 나의 꿈에 대한 대단하신 신조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등바등 살 필요 없이,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한가로이 대낮에 아줌마들이랑 커피마시며 우리애 교육이 어쩌고 수다 떨고, 주말엔 남편이랑 애 데리고 와서 빵이랑 생과일 쥬스 사주며 집 앞 길을 산책하고, 거품이 가득한 목소리로 카푸취노 쥬세요, 시나몬 좋쥐요오~ 라고 주문 하는 삶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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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에서

Posted 2010. 2. 2. 11:48

인도의 푸쉬카르는 델리에서 기차로 7시간만 이동하면 되는 가까운 곳입니다. 인도를 가본 사람이라면 모두 입을모아 말하는 것이 단 7시간 거리의 도시라도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대도시인 델리와는 달리 푸쉬카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분위기가 정말 현격하게 달랐는데요, 대단히 엄격한 성지여서(뭐 3대 성지라나 그렇다네요.) 육식은 물론 술 반입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던 제가 채식에 적응했음에도 그 좋던 푸쉬카르에 사흘밖에 머물지 않은 것은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푸쉬카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아주 귀엽게 생긴 남자애였습니다. 동정심이 물넘치듯 흘러서 바닥에서 자는 인도 꼬마아이를 보고는 선뜻 자기의 침대칸을 내어줍니다. 그러곤 자기가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잤어요. 간밤에 쥐를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기세에 놀란 제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어찌나 신나게 하는지 전 서양아이가 바닥에서 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까먹을 뻔 했습니다. 

인도인을 좋아하지만, 인도인과의 돈문제에 대해서는 까다로웠던 저와 약간 부딪치기도 했는데, 함께 사기를 당하고서는 그제서야 이럴 줄 몰랐다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요. 재밌는 것은 매번 믿고, 매번 사기를 당하는데, 그럴 때마다 처음이라는 듯이 놀라는 겁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푸쉬카르가 다 내다보이는 성 꼭대기에 올라가 맨발벗고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하시시를 담배에 섞어서 피우는데 바람이 살랑 불면 참 그만한 기분이 또 없더군요.
 
친구의 이름은 정말 신기하게도 하수스, 영문으로는 Jesus였습니다. 일정이 달라서 푸쉬카르에서만 함께 다녔었는데도, 아직도 많이 생각나는 친구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필름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다녔다는 겁니다. 그나마 있던 50미리 렌즈(MF였지요;)가 고장나있는줄도 모르고, 초점이 어긋난 채로 계속 찍은 것들이니 아쉬운 사진이 많아요. 요즘 좋은 카메라들이 많이 나와서 깨끗하게 나온 사진들을 보면 제 사진이 초라해지는 것 같습니다. ㅎㅎ 먼지도 무척 많아서 흐릿한 사진에 일조했어요. 

푸쉬카르는 다양한 수공예 악세사리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악세사리와 다양한 색깔에 정신을 못차리는 전 하루 생활비만큼의 쇼핑을 해대곤 했는데요; 노랑꽃 원피스와 구슬 목걸이, 알록달록 실귀걸이, 실+구슬 목걸이, 초록색 티셔츠, 주황색 바지 등등 정신을 못차리고 사댔습니다. 가격도 싸고, 촌스럽고 화려한 옷을 마음놓고 입고 다닐 수 있을 때가 여행할 때 말곤 별로 없으니까요. 



종종 인생의 목적, 여행의 목적, 독서의 목적이 무엇이냐, 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언제고 머뭇거리는데, 별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좋으니까 하는거죠. 그래서 많은 도시를 단기간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그저 이리저리 둘러보고 목적의식 없이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푸쉬카르에 있는 수많은 성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건물은 어떤 양식인지, 그 도시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좀 더 많이 알고갔으면 많이 배웠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지만, 만약 다음에 또 푸쉬카르에 가게 된다고 해도, 마을의 왠지모를 경건한 분위기를 즐길 뿐, 뭔가 더 알아보거나,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 낙타사파리는 동부 끝자락에 있는 자이살메르나 쿠리에서 많이 한다고 해요. 다녀오신 어떤 분들은 별이 태양만하다고 하더라구요. 짧은 일정에, 게으른 저와 친구는 푸쉬카르에서 1박 2일 낙타사파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에게 걸려들어서 낙타를 타기로 합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저 엄청나게 큰 낙타를 타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낙타는 다리가 무척 깁니다. 그래서 앉아 있는 낙타 위에 올라타야 하는데요, 낙타가 앞다리인지 뒷다리를 먼저 펴면 몸이 급격하게 기우는데, 심장이 덜컹할 정도로 무섭더군요. 떨어지면 끝장. ㄷㄷㄷ


낙타를 타곤, 당황스러워보이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낙타가 아프다는 듯이 끼힝힝(?)거리면서 계속 울어서, 제가 너무 무겁나보다고 놀렸거든요. 사막이라기보다는 황무지에 가까운 푸쉬카르 변두리의 마을로 갑니다. 그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의 집에 가서 추위를 달래기 위해 모닥불 앞에서 깔깔이와 스키보드복으로 무장하고는 몰래 공수해온 맥주도 마시고, 너무 착한 아주머니와 할아버지가 해주는 밥도 먹고 놀았습니다.

관광객은 하루만 머물고 떠나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나는 관광객일 뿐인 제 손이 차다며 꼭 잡아주고, 많이 먹으라고 난도 많이 만들어주고, 코리엔더도 팍팍 뿌려주고(-_-), 아무 가식 없이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와 전 그저 행복해서 감동에 감탄을 하며 좋아했는데요, 장사꾼이 그럽니다. 10명 정도의 한국인 단체 손님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춥고 음식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며 환불해달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자기가 많이 상처받았다네요. 좀 더 큰 기대를 하고 왔다면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푸쉬카르는 낙타사파리로 유명한 곳이 아니고, 약간의 맛배기만 보는 정도일 것이라는 것, 낙타사파리를 할 때는 사막에서 자기 때문에 매우 춥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아주 저렴했거든요.

돌침대 위에 침낭을 펴고, 옷을 엄청나게 껴입고, 어둡고 추운 방 곳곳에 촛불을 켜놓고 신혼여행 분위기를 내며(여자끼리 참,,)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면서 불평은 커녕 잘만 놀다 모닥불 곁으로 온 우리는 조금 당황했어요.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길래, 선량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까. 한국 돈으로 하면 만원도 안되는 돈인데 말이죠.

인도에 도착한지 어느덧 보름이 지나갑니다.





빠이에서

Posted 2010. 1. 27. 13:17




빠이(Pai)는 태국의 북부에 있는 작은 소도시로,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가량 이동한다. 내가 갔던 날은 12월 30일인가 31일인가였는데, 태국사람들이 빠이에서 새해 첫 날 일출을 보는 것이 관례라는 걸 모르고 왔기 때문에 당연히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었다. 발품 파는 것은 물론이고, 호텔리스트를 보며 전화를 걸어 방이 있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일관되게 NO.

다행히도 나는 그 당시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밤 12시가 넘어서도 길거리에 나앉아 있어도 상관없었는데, 우리를 불쌍히 여긴 슈퍼 아주머니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즉석민박이라니, 정말 추억이잖아. +_+ 다음 날 일정의 사례비를 건네고 본격적으로 빠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나의 여행 패턴은 세월보내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별다른걸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던 이유는 그곳에서 로맨스가 싹텄기 때문이었는데.....

별다른 건 없다. 그저 도로를 걸을 때면 나를 안쪽에 밀어넣고 걷는다던가, 밤에 기침을 하니 약을 사다준다던가,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씌워준다던가, 그러곤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마을 곳곳을 쏘다닌다던가, 블랙잭을 가르쳐준다던가, 뭐 그런거. 사소한 것들. 
태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지름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동그란, 창호지로 만든 어떤 가벼운 물체를 열기구의 원리로 불을 지핀 후 하늘로 띄우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사진이 있었던가.. 못찾겠다 지금은.) 너무 다행히도 우리가 간 날이 12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 풍선 비스무리한 것을 띄우며 소원을 빌 수 있었다. 이 사람과 내년에도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뭐 이런 오글오글 한 것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판타스틱 장소보다도 빠이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저 푸르고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의 귀여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땅콩가루가 뿌려진 팟타이나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고, 심심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한바퀴를 돌고, 밤이 되면 맥주 한캔씩 마시며 오두막에 앉아 별을 보던 그곳.




길가에는 코끼리가 그냥 막 지나다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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