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사교계와 비참한 희생양들 _ 고리오영감
Posted 2009. 11. 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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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작가들을 시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엘프리데 옐리네트의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읽을 땐 정말이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실용 경제서가 아니고서야 끝까지 읽어내고야 마는게 버릇이어서 [피아노-]를 볼 때에도 무지 괴로웠지만 끝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책을 거의 2/3가량 읽었을 때부터 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의 책을 처음 시도할 때면 참 그 문체가 눈에 잘 읽히지 않아서 적응하는데에 시간을 약간 필요로 한다. 일기장인 것 마냥 있는대로 배설해내는 소설아닌 소설들이야 전혀 적응할 필요가 없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소설들이 있다. 미카엘 하네케가 선택한 작품이란 이유 하나로 책을 선택하긴 했다만 읽는 내내 적응하고 싶어서 혼났다.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방관자적인 태도로 난 절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멀찌감치 물러 서 있다가 마지막무렵에 책을,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단 것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나 왜 딴 얘기하고 앉았니,
[고리오영감]도 도전하고 싶었던 작품 중의 하나로 기꺼이 넣어 줄테다. 발자크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지만 책 제목부터가 ~영감이라니 정말 손이 안가는 이름이다. 재미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마구 온다. 그러나 의외로 이 작품은 순수한 젊은 청년과 화려하지만 뒤가 구린 사교계의 이야기다. _ 물론 이름만큼이나 불쾌한 영감의 이야기도 주를 이루고 있긴 했다.
한 사람을 두고 '으젠', '라스티냐크', '청년', '법대생' 등등 다양한 주어를 쓰는 것을 한시간을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 시간동안 도대체 이 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오리무중이었을 수 밖에. 또한 부르짖고, 크게 외치고, 풀썩 쓰러져버리는 주인공들 탓에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나라면-'을 염두해 두고 읽는다. 그런 면에서 가장 공감을 했던 인물은 바로바로 보트랭을 밀고했던 '늙은' 노처녀와 아저씨, 푸아레와 미쇼노양. 나도 삼천프랑을 준다면야 ㅋㅋㅋ 하면서 그들이 한대로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블로그의 이름을 따왔다. 나처럼 세속적이고 비참한 인간들)
갑자기 귀찮다................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자크가 자신은 굳이 대중의 편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맞는 말인 듯 하다. 그가 대중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면 부르주아와 귀족과 민중을 극명히 대비시켜 놓은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드를 계속계속 생각했다. 불우하고 비참한 빈곤한 돼지들, 화려하되 가난했던 사교계의 인사들을 문학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약간 과장됨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스한 시선으로-
근데 왜 사드가 생각났을까? 같은 프랑스니까?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서? [숏버스]에선 이야기를 섹스로 풀어내더군. 같은 소재로 반대지점에서 세상을 표현해낸거라고 본다. 여튼 사드가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비참한 세상이 고리오 영감의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서 사드가 자꾸 생각나나 보다.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발 붙이고 있겠다고 바둥바둥 거리는 사람들이 별거냐,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인간들이 사는 지구 땅바닥이라는게 늪이 아니면 얼음이거든.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비참해질 수도, 그럼에도 행복할 수도 있고 어디에 서 있는지 상관 없이 으젠처럼 소신껏 인간의 행동이라고 정해진 길을 의젓하게 걸을 수도 있는거다.
가끔은 이렇게 완벽한 주인공이 나와서 환상문학인 작품도 읽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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