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세계문학전집 18)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오노레 드 발자크 (민음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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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작가들을 시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엘프리데 옐리네트의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읽을 땐 정말이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실용 경제서가 아니고서야 끝까지 읽어내고야 마는게 버릇이어서 [피아노-]를 볼 때에도 무지 괴로웠지만 끝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책을 거의 2/3가량 읽었을 때부터 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의 책을 처음 시도할 때면 참 그 문체가 눈에 잘 읽히지 않아서 적응하는데에 시간을 약간 필요로 한다. 일기장인 것 마냥 있는대로 배설해내는 소설아닌 소설들이야 전혀 적응할 필요가 없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소설들이 있다. 미카엘 하네케가 선택한 작품이란 이유 하나로 책을 선택하긴 했다만 읽는 내내 적응하고 싶어서 혼났다.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방관자적인 태도로 난 절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멀찌감치 물러 서 있다가 마지막무렵에 책을,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단 것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나 왜 딴 얘기하고 앉았니,

 [고리오영감]도 도전하고 싶었던 작품 중의 하나로 기꺼이  넣어 줄테다. 발자크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지만 책 제목부터가 ~영감이라니 정말 손이 안가는 이름이다. 재미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마구 온다. 그러나 의외로 이 작품은 순수한 젊은 청년과 화려하지만 뒤가 구린 사교계의 이야기다. _ 물론 이름만큼이나 불쾌한 영감의 이야기도 주를 이루고 있긴 했다.

 한 사람을 두고 '으젠', '라스티냐크', '청년', '법대생' 등등 다양한 주어를 쓰는 것을 한시간을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 시간동안 도대체 이 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오리무중이었을 수 밖에. 또한 부르짖고, 크게 외치고, 풀썩 쓰러져버리는 주인공들 탓에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나라면-'을 염두해 두고 읽는다. 그런 면에서 가장 공감을 했던 인물은 바로바로 보트랭을 밀고했던 '늙은' 노처녀와 아저씨, 푸아레와 미쇼노양. 나도 삼천프랑을 준다면야 ㅋㅋㅋ 하면서 그들이 한대로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블로그의 이름을 따왔다. 나처럼 세속적이고 비참한 인간들)

 갑자기 귀찮다................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자크가 자신은 굳이 대중의 편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맞는 말인 듯 하다. 그가 대중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면 부르주아와 귀족과 민중을 극명히 대비시켜 놓은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드를 계속계속 생각했다. 불우하고 비참한 빈곤한 돼지들, 화려하되 가난했던 사교계의 인사들을 문학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약간 과장됨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스한 시선으로-

 근데 왜 사드가 생각났을까? 같은 프랑스니까?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서? [숏버스]에선 이야기를 섹스로 풀어내더군. 같은 소재로 반대지점에서 세상을 표현해낸거라고 본다. 여튼 사드가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비참한 세상이 고리오 영감의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서 사드가 자꾸 생각나나 보다.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발 붙이고 있겠다고 바둥바둥 거리는 사람들이 별거냐,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인간들이 사는 지구 땅바닥이라는게 늪이 아니면 얼음이거든.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비참해질 수도, 그럼에도 행복할 수도 있고 어디에 서 있는지 상관 없이 으젠처럼 소신껏 인간의 행동이라고 정해진 길을 의젓하게 걸을 수도 있는거다. 

 가끔은 이렇게 완벽한 주인공이 나와서 환상문학인 작품도 읽어 주어야 한다. 



GR Digital Ⅱ. F2.8, 1/100, 군산금강하구둑, 20091114

설레임과 익숙함에 대한 나의 선호도를 생각해보면 대체적으로 설레임에 비중이 조금 더 큰 듯하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유전자는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쇼펜하우어도 삶의 목적을 괴로움에서 찾지 않았던가? 세상은 돌연변이와 불안정성, 불가능한 우연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하면 과학자들은 멍청한 인문학도라며 비웃겠지.

얼굴이 단백질처럼 생겨갖고는 '인간은 단백질덩어리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라고 무려 <현대문화와 철학> 강의시간에서 발표한 수의대학생. 내가 영혼의 존재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의 수많은 빈틈들을 지적하자 '당신의 그러한 생각도 당신의 뇌라는 단백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할말없게 만들어버린 단백질 맹신도가 자꾸 생각난다. 

리처드 도킨스가 비난한 것처럼 정말로 철학과 인문학에서는 다윈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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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2006 / 스페인, 멕시코, 미국)
출연 이바나 바쿠에로, 더그 존스, 세르지 로페즈, 마리벨 베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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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려다가, 이왕 먹을 거 재밌는 걸 보면서 먹자. 란 생각에 이런 저런 오락프로그램을 골라보다가 시덥잖아서 가볍게 판타지영화나 한번 땡겨볼까 싶어서, 고른 영화였다. 

휴일 아침을 스펙터클하고 신나게 맞아볼까- 하는 나의 기대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첫 자막에서부터 무참히 깨지고 말았고, 무슨 아침을 1시간을 넘게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깨작댈 정도로 입맛이 급격히 떨어졌다. (밥이 문제가 아님) "마케팅이 안티-"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오필리어와 세개의 열쇠'라며 어린이를 현혹하는 글귀가 점차 황당해지는 약간의 적응기를 거친 뒤에야 영화에 빠져든다.  

분장이 참으로 예술이다.
CG보다 분장에 더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판' 

처음에는 이건 뭔가요, 싶을 정도로 허접해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이 생명체(?) 연기 참 잘한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몸에서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CG였다면 그 소소한 감정과 느낌들이 이렇게까지 잘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편인데, 윽박지르면 무섭다. 그러나 '판'은 약과!!  



이분 어쩔 것임????????? 

먹던 밥알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무섭다.
원래의 얼굴에는 콧구멍 2개와 입만 있는데, 잠에서 깨어나며 앞접시에 놓여있던 눈알 두개를 손바닥에 붙어있는 눈알 구멍에 집어넣고는 저러고 오필리어를 쫒아온다. 또 (이미지를 구하지는 못했는데) 미친 주먹보다 더 큰 구더기? 바퀴벌레? 무리들과 침을 쩍쩍 흘리는 대왕두꺼비는 정말 후덜덜-  입이 딱 벌어진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떻고.

비주얼이 정말 감각적으로 잔혹하다.  

영화를 보면서 용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저 괴상한 괴물들에 대항하는 오필리어의 용기, 
내전은 끝났다며 자신들을 반란군으로 칭하고 쥐잡듯이 잡으러 다니는 군대에 대항하는 혁명군의 용기,  
자기 한 목숨 중요해서 초조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사의 용기,
악독한 대령의 용기,(이것을 용기라 칭할 수 있다면) 
이 오바스럽게 잔혹한 이야기를 눈 똑바로 치켜뜨고 지켜보는 나의 용기. 

진정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 용기내어 힘들게 시도했는데 실패했을 때가 두려워서 어디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이마저도 아니라면 난동일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수만가지 생각들 속에서 갈피를 못잡는 건 가끔 행복하다.
이 영화를 보는 수만명의 사람들 역시 각자 따로따로 다른 수만가지 생각을 했을 터- 

어디를 봐야할 지를 아는 사람에게로만 한정되겠으나, 이 어두운 이야기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겠다고 자신하시는 분들께 강추해드립니다. 이만큼 지성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이왕이면 19세
+ 이왕이면 부제도 삭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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