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

Posted 2009. 11. 17. 14:57
누군가 하물며 사랑니 하나도 쓸모없지 않단다. 치아건강에 오히려 좋다고.
그러나 내 경우엔, 사랑니 때문에 아랫니 열이 다 틀어졌고, 한달에 일주일씩 생리통마냥 치통을 겪어야 한다.
수술받아야 하는 뿌리가 두개로 갈라진 나의 사랑니.

착하지만, 착해서 얄밉고 2프로 부족해서 답답한 최대리.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난 내가 엄살 많이 부리는 줄 알았다.
인대 조금 늘어났다고 며칠을 휴가내고 하루종일 낑낑대며 한숨쉬어대고 유령처럼 걸어다니는 우리 최대리..
미안하지만, 당신의 오바도 쓸모없다.

누군 인대 안늘어나본줄 아나봐.

'Pa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의 목적  (6) 2009.11.30
빅브라더와 무한도전  (0) 2009.11.24
진화론에 뚫린 구멍을 영혼이 메울 수 있는거 아닌가  (0) 2009.11.20
고속도로 위  (0) 2009.11.16
티스토리  (4) 2009.11.13

고속도로 위

Posted 2009. 11. 16. 10:49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기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

까지 읽었을 때 고속버스의 조명이 꺼졌다.
처음으로 내게 책을 읽어준 남자에게 보답하고자 속으로 몇번이나 되뇌이던 구절을 읽어 주던 중이었는데, 가로등 불빛에도 의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서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초속 5cm]를 봤냐는 질문에 난 찬사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 애니메이션의 화두인 벚꽃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눈이 내린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가로등의 빛에 반사되어 벚꽃처럼, 거짓말처럼 예쁘게 내리는 눈을 보며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눈이 '내린다'는 것은 조금 잘못된 단어 선택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은 앞에서 뒤로 흐르거나 분수처럼 뿜어져나와 흩어지는데 앞으로 눈이 내린다는 말을 쓰지 않고 눈이 흐른다, 눈이 솟아 나온다 라는 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잠시 고민했다.

- 첫눈에 얽힌 즐거운 추억이 있나요?
라고 내가 묻자 그는
- 응. 오늘이에요, 
라 답했다.

나는 우리가 마치 오래된 연인이었던 것처럼 그의 어깨에 살짝 기댔다.

'Pa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의 목적  (6) 2009.11.30
빅브라더와 무한도전  (0) 2009.11.24
진화론에 뚫린 구멍을 영혼이 메울 수 있는거 아닌가  (0) 2009.11.20
쓸모없는 것들  (2) 2009.11.17
티스토리  (4) 2009.11.13

티스토리

Posted 2009. 11. 13. 17:50
이것저것 꾸밀게 많아서 좋은데, 
마치 먹을게 너무 많으면 뭐 먹을지 잘 모르겠고, 뭘 먹어도 다 똑같은 것 처럼 어렵다.

피곤한 금요일 저녁이지만, 언제나처럼 음주 고고씽- 친구가 이리 많았나 싶을 정도로 11,12월은 바쁘다. 
근데 또 친구가 많다고도 할 수 없는게 사실 일정의 일이 반, 이사가 반의 반을 차지하니까;

첫글이라 왠지 부끄러움. 괜히 혼자 얼굴 빨개짐.

흐흐, 수많은 블로거들 중의 듣보잡 하나!라, 예전엔 이게 싫었는데 오늘은 이래서 마음에 편하다.

'Pa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의 목적  (6) 2009.11.30
빅브라더와 무한도전  (0) 2009.11.24
진화론에 뚫린 구멍을 영혼이 메울 수 있는거 아닌가  (0) 2009.11.20
쓸모없는 것들  (2) 2009.11.17
고속도로 위  (0) 2009.11.16

콜레라 시대의 사랑 밑줄긋기

Posted 2009. 11. 13. 12:42

콜레라 시대의 사랑 1(세계문학전집 9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4년)
상세보기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기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무질서하게 성당을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를 너무나 가까이, 그리고 너무나 분명하게 느낀 나머지, 중앙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어깨 너머로 바라보고자 하는 저항할 수 엇는 힘에 복종했다. 
그러자 눈에서 두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눈과 창백한 얼굴, 그리고 사랑의 두려움으로 굳어버린 입술을 보았다.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그녀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에스콜라스티카 고모의 팔을 잡았고, 고모는 레이스 달린 긴 장갑 속으로 그녀의 손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로알드 달 (강, 2005년)
상세보기

제목이 '맛'이어서 그런지 각기 다른 맛의 케이크를 한조각씩 한조각씩 아껴먹은 기분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도 부르고 그 맛이 어떤지 잘 음미할 수 없게 되니까 하루에 2개씩. 더 먹고 싶어도 아껴두었다가 제일 맛있을 때 먹는 평소의 식습관을 따라 찬찬히 [맛]을 읽었다. 

첫 느낌은 정말 너무 재미있고 뒷통수 빵때리는 이야기로 독자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작가의 특권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겠다- 싶었다. 진짜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기 보다는 이 이야기를 내가 재미있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얘기해주고 친구들의 놀라는 표정이나 깔깔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입술을 옴싹달싹하며 손을 달달 떨었다.  

두번째 느낌은 의외로 공포심이었다. 로알드 달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브라운 신부가 그랬다. 지금까지 그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자기였다고, 살인자의 속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왜,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그 살인자가 되는 방법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브라운 신부는 계속해서 참회하는 동시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추리했다.  

사실 유명한 탐정이나 공포소설가는 바로 이러한 비결을 갖고있기에 사건을 사실과 흡사하게 상상해낼 수 있는 것이다. 

로알드 달의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너무나도 욕망에 충실하여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사실 로알드 달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기에 난 로알드 달이 무서워졌다. 그는 평범한 이야기꾼을 넘어서서 너무 사악하고 추악한 인간 자체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00년도였던가, 이 작가가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에 선정되었다는 경력에도 경악했다. 무섭다. 

소설가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인생에 주목하지 않아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보면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부자인 사람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엉뚱하고 기이한 행각으로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로알드 달 역시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당치 않게 재미있었다. 그들에게 평생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를 포착하여 그것을 극대화해서 읽는 사람 벙찌게 만드는 특유의 상상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말도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게 문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들. 특이하고 재미있고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실제로 떨린다.  

하지만 너무 단 느낌- 그래, 심하게 달다. 달콤하게 기분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달아서 약간 쓴맛이 필요하다. 왜, 나는 달달한 카페모카에도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야 먹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설명하니 명쾌하군. 
[taste]. 발버둥 쳐봤자 난 벌써 로알드 달에게 세뇌당했나보다. 새끼 손가락을 내어 놓아야겠다. 

천사의 속삭임(개정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기시 유스케 (창해, 2007년)
상세보기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가,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 보통이 설명해주는 몽테뉴의 이론 中 -

기시 유스케는 분명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은 아닐지언정, 똑똑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사람의 작품을 2번째로 읽었는데, 이 작가의 노력에 매번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작품에 담긴 노력에 감탄을 하는데 어느정도로 감탄을 하느냐면 중고샵에 이 작가의 책을 파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소장할 정도로 탄성해 마지않는다. 

첫번째로, 그의 정보 수집능력.
기생충에 전혀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어려움 없이 들을 정도로 초등학생에게 설명해주듯 쉽게 설명해주지만, 그와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쉽게 다루지도 않는다.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정보를 바탕으로 실재로 만들고 독자들은 reality와 fiction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부터 그만의 독자적인 공포가 탄생한다.  

다양하고 깊은 지식이 모여 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놀라울만큼 간결하고 깔끔하다. 공포/호러/미스터리라고 하기엔 과장도 없고 그저 fact의 나열인 것마냥 작가 특유의 분위기도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때문에 [천사의 속삭임]이 더 무섭다. 평범한 도로를 걷고 있는데 절벽으로 가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은근슬쩍 든달까, 안에 담긴 작가의 무심함이 두렵다. 

두번째로, 그의 스토리텔링.
그의 공포는 철저한 인간탐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부적응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 옆집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독자의 공포심을 건드린다. 독자는 대중이기도 하면서 개인이라, 쉽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사소한 것에 의표를 찔려 소스라친다, 예를 들어 거미나 황산, 오염된 물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그가 어떻게 이용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지를 확인하려면 마음을 열고 책을 봐야 할 것이다. 흔한 소재라고 다 같은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흔한 헐리우드 소재라는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말것. 

세번째로, 그의 철학.
철학이 무엇인고 하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앞으로 누군가 철학 어쩌고 운운하며 잘난체 한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 생각하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면 될 것이다.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를 읽으며 놀란 것은 그 어느 스승보다도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 외에 프란츠 파농의 저작을 읽을 때와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을 때가 가장 최근의 경험이었는데 한 문장, 혹은 한 문단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날개를 달고 지구 한바퀴를 돌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 이런 대가들에 감히 어떻게 기시 유스케를 갖다대냐고 한다면 난 왜안되냐고 싸울 자신도 있다.  

이 사람이 던지는 화두는 여느 윤리학 서적의 이론적인 질문들보다 더 날카롭고 실제적이다. 뒷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데도 순간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상들은 뇌를 자극하고,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해보는 재미에 책을 잠시 떨구고 '딴생각'을 하게 만든다. 텍스트에 질질 끌려가는 보통의 경험과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천사의 속삭임]이 매우 무섭고 공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고, 그의 새작품을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일단 손에 들면 무서워서 놓고 싶어도 감성보단 이성을 자극하는 묘미가 즐겁고, 그때문에 읽고 싶어도 손이 잘 안가는 호러물과는 달리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 든다. 매력적이다.

통역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수키 김 (황금가지, 2005년)
상세보기


너무 이른 시각이라 술을 팔지 않는다는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술 팔기를 기다리며 가벼운 탐색전을 벌인다. 만난지 30분도 안되어 대뜸 빨간 책을 꺼내어 들며 첫문장을 읽어보라고 들이미는데, 이거 참 마음에 안드는 문장이어도 감탄하는 척 해야할까, 란 생각이 드는 이상하고 요상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읽어버린다.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이건 탁월한 문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전 9시에 공허한 마음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 나의 절망을 상상케 하기 때문에 괴로운 문장이다. 내가 흡연가였던가는 이미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정말 이 문장이 괜찮은 문장인 이유는 이 문장과 그녀와 나와의 일체감을 이 어색한 순간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느낄 것이라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은 상관 없이 난 그녀를 온마음으로 느낀다.   

작가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조각조각난 마음들을 주인공이 춤을 추듯 하나씩 주워 올려서 수습해나가는 모습을 아주 무미건조한 문체로 보여주는데, 이런 딱딱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가 되기는 참 쉬웠다. 그리 따뜻한 시선을 갖지도 않은 작가를 따라 난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사건들을 같이 겪는다. 그녀는 내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믿게 되어버린다, 내가 옆에서 손 꼭 붙잡고 우리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속 힘을 불어 넣어줬으니까. 

그리고 그레이스. 한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수지의 입장에서만 서술되는 타자. 그러나 수지를 수지이게 한 장본인인 언니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대사 하나 없이 현실세계에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느 누구보다 서사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소설계의 작은 혁명이 아닐까,  

주인공만 알고 있는 감춰진 과거의 사건들을 감질나게 보여주면서 이미 주인공에 완벽하게 이입을 한 독자들을 약올리고, 알면 괘씸해서라도 책을 탁 덮어버리면 그만이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작가의 마수같은 문장들에 얽혀버려서 책 안으로 끌려들어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누군지, 내 뒷목덜미에 소름이 돋던지 말던지도 신경쓰지 못하게 되버리고 만다. 뭐 하나 같이 공감하는 것 하나 없음에도 그녀를 오롯이 느끼게 되는 전율, 독서를 할 수록 느끼기 힘들어지는 자극을 오랜만에 받았다.  

애국심이나 뭐 인종차별, 마음붙일 데 없는 .(쩜)5세대들, 도덕성과 이기심, 뭐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신문보면서 생각해도 되니까 일단은 딱딱해 보이지만 포근한 담요같은 작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 덫, 그물, 거미줄, whatever.. 에 걸리고 말 것이라는 걸 당신이나 나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런 책에 질식사라면 언제든지 두손들고 대환영.

« PREV : 1 : ··· : 7 : 8 : 9 : 10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