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히스토리 X 상세보기


외국에서의 받아봤던 인종차별이란,  
성적으로 노리개감의 목표물이 된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가 외국에선 좀 낮고, 호기심이 생긴단 걸 알기도 하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위험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섹스하자고 달겨들기보단 좀 더 신사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시아계 남자들의 경우 좀 더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에서의 폭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에드워드노튼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말도안되는 인종차별이론이라도 진짜 설득력있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흑인들, 아시아인들이 굴러들어와서 백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빌어먹을 평등정책때문에, 능력있어서가 아니라 흑인이기 때문에 원래 백인들의 것이었던 일자리를 얻고 더 나은 권리를 획득한다. 백인들이 낸 세금은 이주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된다. 

아, 사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 또한 백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빈곤층이나 외국인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때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덕을 보는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스킨헤드들의 이론과 분노에 쉽사리 휩쓸릴 뻔 했다. 사실 물밀듯 이주해오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위한답시고 인권이나, 사랑,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이런 사상이 무슨 상관이야, 일단 내가 손해를 보는데!  

그러나 영화 중반부부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당당하게,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살해하고 감옥으로 들어간 에드워드노튼은 소수의 입장에 선다. 감옥에선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월등하다. 그 곳에서 말 한마디 섞고싶지 않았던 함께 일하는 흑인과 소통하게 되고, 그가 고작 TV를 훔친 죄로 6년형을 구형받았단 얘기를 듣고, 순진하게 백인우월주의를 외치다가 믿었던 백인집단에게 강간당하며 그 동안 그를 지탱하고 있던 온 세계가 흔들리게된다.   

결국 그를 보호해주던 백인집단에서 벗어나 흑인집단의 보복성 린치를 기다리지만 그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출소하여 더 막강해진 스킨헤드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추앙하던 동생도 그 구렁텅이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말해졌던 것 처럼 그들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될 수도 있고, 백인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기득권층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쏟아냈을 때 댓가는 꼭 치루어야 한다. 물론 치루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살자, 그 분노의 창 끝이 나를 향했을 때를 두려워하며- 


* 꽃남이 짤방   

원숭이

Posted 2009. 12. 17. 14:41


기시 유스케의 [천사의 속삭임]과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으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아마존의 '원숭이'는 무섭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다는 것.
책에서 읽은 원숭이들의 포획물들(이 물건들 때문에 원숭이들에게 죽임을 당한 양키들에게 건진) 을 읽어 보며, 카메라를 갖고 주렁주렁한 악세서리를 걸고 이 친구에게로 다가가서 찍을 때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는지 실감했다. 책속의 양키떼들을 비웃을 것도 없이 내 무식이 용감이다. ㄷㄷㄷ

1박 2일로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이라지만, 공항가는 거부터 기다리는 거 뭐 이래저래 따져보니 숙소에서 집까지 5시간은 걸린 것 같다;; 괜히 면세점에서 충동구매로 화장품을 지르며 자본에 탐닉하는 내 자신을 새삼 재발견했다.
이번엔 섭지코지에 있는 리조트였는데 바다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녀들이었다. 제주가 남쪽나라이긴 하지만 칼바람때문에 서울 못지않게 추웠었는데 그 추위에 바다로 잠수하며 숨비소리를 내는 그녀들을 보니, 난 자연산 생굴을 사먹고 싶어졌다. (이렇게라도 그녀들의 삶에 도움이;;;;; 쿨럭;;) 근데 팔지 않더라; 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중에 하나가 생굴이었는데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ㅇ_ㅇ

너무 춥다. 오늘은 치마를 입었는데, 스타킹 아래의 피부가 찢어질 것 같다. 
그래도 난 추운게 좋다. 괜히 흥분되고 두근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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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Posted 2009. 12. 11. 14:36


사진을 찍어달라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며 이렇게 예쁘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사진을 찍은 댓가를 요구했다. -_-
난 과자를 엄청 많이 줬으므로, 이 친구 얼굴을 올려도 되겠지. 어쨌든 난 산거잖아;;
 
지금으로부터 거의 2년 전 쯤이네. 삶에 낙이 없다고 징징대니 친구가 다시 여행하고 싶어서가 아니냐고 물었다. 
항상 여행에 목말라있었기에, 그런가 싶었는데 왠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정처없는 여행길에 서고 싶지는 않다. 왠지 두렵고 막연한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전 사진을 들썩이고 있는 건 다시 나가고 싶어서일까; 
알수없뜸. 나자신도 모르는데 뭐를 알겠냐.

죽어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12월 22일이 다가오고 있다. 두둥.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워홀 발표날이다.
이 날이 와야(전년도를 봤을 때 또 미뤄질 것 같지만? ㅠㅠ)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놈의 비자 심사가 이렇게 까탈스러워갖고는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지-_- 대안으로는 뉴질랜드를 생각해보긴 했는데, 요즘 일자리 없어서 호주로 다 간단다. 그렇다고 호주를 또 가고싶진 않다. '다윈'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초매력적인 도시가 있긴 하지만 더운 나라에서 생활은 정말 별로.. 여행은 언젠가는 가겠지만- 
서류 준비 열심히 해서 내긴 했는데,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붙었으면 좋겠다.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일은 쌓여있고, 정신은 나가있고;; 스트레스만 쌓여서 위염재발!! 게다가 왠일인지 이번엔 장염까지 같이 왔다. 젠장. 그래도 술은 마신다;;;; 아, 술이라도 없으면 정신빠진 12월을 어떻게 견딜지. ㅠ_ㅠ 아침점심을 다 못먹으면서도내일은 괜찮겠지 하며 저녁에 술한잔을 마셔야 하는 이 알콜릭을 어찌하리.

위에 사진 찍을 때 함께였던 친구가 그제 귀국했다. 내가 왠 비스킷 하며 벙찐 표정을 짓자, 원래 이 나라 거지아이들은 그런다며 담담하게 내 가방 속의 과자를 꺼내주던 친구-_- 막내작가일에 적응하던 것 같더니 못살겠다며 6월에 훌쩍 떠나버렸으니.. 벌써 반년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만나서 술백잔 하기로 했다. 신나지만, 몸이 따라줄지 걱정이다. 오늘은 자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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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Posted 2009. 12. 10. 13:07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읽지 않는 것처럼(예외도 있긴 하지만) 한 번 가본 곳도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여수의 향일암도 마찬가지로, 눈의 호강을 사진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해봐도 다시는 안갈 것이라는 데는 변함없다. 정말 힘들다. 향일'암'이라는 이름에서 왜 난 평화로운 절만 떠올렸을까, 새벽 4시에 룰루랄라 버스를 타고 향일암 앞에 내려서 언제 오르막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태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정말 치악산 등정에 못지 않은 체력소진을 한 것만 같은 기억이다. 사전 정보가 중요하다능 '-'

그래도 누군가 전라도의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서슴없이 여수라고 말한다. 절벽 꼭대기에서 바다 저 너머로 스물스물 해가 기어나오는 해덩어리를 바라보는 감격은 뭐, 나누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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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해_ 숏버스

Posted 2009. 12. 10. 13:07
숏버스
감독 존 카메론 미첼 (2006 / 미국)
출연 숙인 리, 폴 도슨, 린지 비미시, PJ 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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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장에 가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의 스타에게 나는 그저 소리지르는 군중의 한명이 되는 기분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대 위의 배우나 가수의 인생에 비해 내가 너무 보잘것 없어 보여서 요즘은 연극도 잘 안보게 된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스탠딩콘서트 예약을 하곤 혼자(!) 가서 봤던 콘서트가 존 카메론 미첼이 한국에 왔을 때였다. 난 그만큼 그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사랑한다. 그날도 굉장히 슬퍼져서 집에 오긴 했다.

호주에 있을 때 숏버스 개봉소식을 듣고 마침, 근처의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해서 거의 달려가다시피해서 영화를 봤다. 그 때 같이 봤던 애인은 게이혐오자였는데 영화가 끝난 후 나와 약간의 말다툼을 했다. 그는 내게 제임스가 아름다워보인다며 내가 이상해진걸까.. 라며 평소에 비해 엄청나게 양보를 한 편이었는데, 난 약간 비아냥거렸던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어하는 걸 나때문에 본 것이었는데 좀 잘해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 

어젠 토요일 밤이었는데 늦잠을 자도 된다는 생각에 들떠서 안자고 뒹굴거리다가 아이팟에 들어있던 [숏버스]를 발견하곤 보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보고 안들리는 부분이 있어서(많았나?) 자막을 보며 다시 한 번 보고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ㅅ오빠가 전해줘서(고마워요- ) 갖고 있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이다. 

내가 그 때 생각보다 많이 이해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영어 잘했었나요.... ㅋㅋ 아무래도 영화가 대사로 전달하는 종류가 아니어서였던 것 같다. 음악은 가슴떨리고,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어쨌든 영화는 해피엔딩이고, 사람들은 웃으며 노래하며 영화를 맺는다. 나도 씩 웃으며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날 땐 뭐가 그리 슬펐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난 일종의 공황상태였다. 슬프고 아프고 답답한 익숙한 기분.  왠지 이별했던 다음날의 기분이랄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래는 2006년 11월,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적어두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얽매이는 것, 아니면 외로움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나보다. 그리고 꿈꾸며 술마시던 국문과 인맥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삶을 준비하는 보통 사람들을 만나서 문화적 충격에 휩싸여 토익공부를 시작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우리는 사실 얽히고 섞여 있어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란다. 멀리서 보면 하나지만 사실은 다 이리저리 갈려 있어서 따로 놀고 있대.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고, 애인이라 규정되는 사람은 꼭 남자, 여자, 내 또래 가 아니어도 되고 남녀노소 누구와도 다 사랑할 수 있대. 
 육체적인 사랑도 마찬가지. 어떻게 다른 여자랑 잘 수가 있어? 라고 말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어떻게 다른 남자랑 잘 수가 있어? 마찬가지. 너도 걔랑 자도 되고 나도 걔랑 자도 되고. 셋이 자도 되고. 다섯이 자도 되고. 다 같이 사랑하면 되는거고.
  버스에 잠깐 올랐다가 내리듯 그렇게 인연은 지나가고 만나고 그러는거야. 진정한 사랑을 못찾아도 그만, 그냥 스쳐가는 여러 사람들 만나면서 외로움 달래고. 영원한 사랑을 찾아도 그만, 한 사람과 평생 친구인듯 가족인듯 서로 외로움 달래고. 굳이 얽매이지 말자. 풀어질 인연은 풀어져 서로 따른 인연과 얽히고, 엮일 인연은 어떻게 해서도 묶이게 마련. 
그렇게 넋 놓고 살다가 난 뭐 먹고 살아? 
물어보기도 전에 영화는 끝났다.
SHORTBUS는 떠났다.

 
   

 PS/ 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단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좋은 건 나만 소중해하고 싶은 습성이라 ㅎㅎ

2009.02.22 작성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 (1998 / 프랑스, 홍콩)
출연 올렉 멘쉬코프, 줄리아 오몬드, 리차드 해리스, 다니엘 올브리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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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상의 반복되는 패턴에 작은 전환점이 하나 생겼는데, 이런 때일 수록 격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이야기가 땡기는 법이다. 무료할 때 그런 영화를 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지금같을 때 이런 미친 로맨스는 매우 무척 굉장히 최고로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더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하며 [러브오브 시베리아]감상을 마쳤다. 

밤새 이런 비극은 어디에서 오느냐, 난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느냐에 사로잡혀있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일까,
아니면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가 더 자기 자신의 사랑에 자신감이 있느냐의 문제일까,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여 과거현재미래를 다 팽개치고싶었던 적이 한두번 있었다. 그래서 난 안드레이의 순수한 감성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의 난 아마 감당못할 것이다.어린 난 오만하지만 자신감은 없기에- 

제인에게 청혼하러 온 대위를 대신하여 청혼장을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던 안드레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고 만다. 그 때 제인은 특유의 능글맞음으로 그 상황을 겨우 넘기지만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한다.
"Do you at least understand what that boy did here today, what he has done to himself?" 

난 꼭 속으로만 불타고, 겉으로는 능글능글 비즈니스에 충실하는 제인이 미웠지만 사실 그녀는 나와 다르지 않다. 거의 비슷하다. 날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의 열정을 즐기는 것 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나 사실 그 청년이 날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한다는 속마음은 숨길수밖에 없다. 물론 이게 잘 숨겨지지는 않는 종류의 감정이지만, 비정한 상황은 보이는대로만 생각하게끔 만든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는 확신보다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온 전신을 휘감게 되니까.  

결말은 아찔하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10년간을 그를 생각하며 그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단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그는 적어도 그 안에서 행복했어야 했다! 
여자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20분동안 10여년의 격정을 다 지워내지만 남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좇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는 과거현재미래를 다 버리고 그녀를 쫓아갈 힘이 없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추위, 눈, 보드카, 군인들의 오만한 눈빛과 젊음, 사랑과 결투. 하얗게 불타는 순수함.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건 범죄다. 

2009.03.14 작성

(뭐야, 화이트데이에 이런 영화 보고 이런 리뷰 작성하고 앉아있었던거냐-_-)


주말에 안면도에 다녀왔다. 무려 세시간 반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데 허리도 아프고 자도자도 도착을 안해서, 눈을 떴는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심심하고 지겨워서 어쩔 줄을 모르던 우리는 내 아이팟 구경을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며칠 전에 급 땡겨서 다운 받아 두었던 [미녀와야수]를 클릭하게 되어 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나이 들어서도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란다. 나 말고도 있구나- 

이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 나같은 외모지상주의인 애가 볼 때, 마지막에 벨이 야수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 I love you..흑흑 " 이럴 땐 정말 감동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런 짐승같은 외모의 야수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니, 이것은 정말 사랑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경이롭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야수가 변한 왕자의 모습이 벨이 그토록 혐오하던 개스톤의 외양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든것... 정말로 그녀에게 외모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다 알면서도, 매번 야수가 어떻게 생긴 왕자로 변할지 두근두근 기대를 하면서 보는데.. 별로 멋지지 않아서 정말 매번 볼 때마다!! 실망한다. 그런 근육빵빵 몸매와 남성다운 턱라인은 내스타일이 아니야. 외모지상주의여봤자,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의아해하기도 하는 외모의 남성을 추구하는 것 같다. ㅋㅋ 

어렸을 때 보고 지금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차이점은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다. 

개스톤을 쫓아다니는 난장이같은 남자가 있는데, 개스톤과 마을사람들은 그를 무지하게 괴롭힌다. 집단폭력은 물론이고, 추운 겨울에 눈사람이 될 정도로 몇시간이고 세워두고는 벨을 감시하게 한다. 손과 얼굴이 푸르딩딩하더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스톤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비굴하다.
어쩌면 어린이(혹은 어른)들은 내가 힘만 세다면, 약한 이들을 이렇게 마음껏 괴롭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무서운 무의식의 세계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참 예뻐서 웃음이 났다. 제일 예뻤던 것은 마지막에 그들이 춤추는 장면을 스테인글라스화한 것이었는데, 소장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근나근한 벨의 목소리- 따라할테다 ㅎㅎ

왜 요즘들어 미녀와 야수를 보고 싶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림책도 있었고, 퍼즐도 있었다. 아마 그녀를 닮은 인형도- 까먹고 있었지만 미녀와 야수가 나의 favorite 이었던듯. 아직도 자꾸 쫓기고, 떨어지는 꿈을 자주 꾸는데 계속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보다. 언제쯤 어른이 될라나요?

2009.02.09 작성

로망마저도 귀찮다면.

Posted 2009. 12. 7. 14:52

 바쁠수록 무기력해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야심차고 희망가득한 계획 때문이었는데, 문득 그 마저도 모두 귀찮아져버렸다. 여행도, 술도, 친구도, 블로그질도, 영화도, 책도, 미래도 모두 부질없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고, 두렵고 막연하다. 왜이래? [우부메의 여름] 때문인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딱히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였다. 학교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수차례 서류탈락으로 인해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였고, '평생 먹을 마음의 양식을 쌓았으니 괜찮다!'고 성공지향의 대표주자 아버지께 당당히 소리를 지르던 나는 저 깊숙히 숨어버려 경영학과에 갈걸- 후회도 설핏 들 때쯤 이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됐고, 단지 2달 여행다니며 외국애들이랑만 놀며 겨우겨우 회복한 영어덕분에 합격했다. 연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택도 없이 적었지만 주5일에 야근도 없고,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국장도 비정규직인 체제라 별다른 차별대우가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미래인터넷'이라는 과제명과 국제 학술행사를 대부분 맡을 것이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교수들이랑 일하며 그들의 특권의식에 질리기도 했고, 서울대,북경대 박사들과 일하며 엘리트에 대한 나쁜 편견을 버리기도 했고, 완전체 여자를 온몸으로 겪으며 괴로워하기도 했고, 잦은 제주도 출장에 이젠 제주도 따위..;; 가 되어버렸고, 호텔 부페 따위, 먹기도 지겹다. 잠자리나 입맛이 고급화되어 배낭여행은 이제 꿈도 못꾸게 됐다.

 가장 큰 수확은 나는 회사에 부적합한 인간형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길을 모색하고 계획하는 중인데, 이 모든게 지겨워져버렸다는 건 무척 당황스럽다. 저물어가는 2009년마냥 에너지가 소진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내게도 충만한 2010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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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discourse, text)은 형상(image, figure)에 반대되는 의미로 쓰인다.

그림은 담론일까, 형상일까?
담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화풍은 원근법의 설정, 음영의 법칙이나 비율 등 이성에 근거한 예술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감성보다 이성이 우위에 있었다. 그림에는 해독이 가능한 기호와 메세지가 담겨 있었다. 그림 속에는 경배하고 숭배하는 대상들이 특별하고 신비한 aura를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림이라는 2차원의 세계를 마주치는 것이 아닌 aura를 통한 3차원의 세계를 보았고 이것은 그 당시의 이데올로기이자 허상이었다.

현대의 예술은 어떠한가?
기술이 발달하고 그로 인해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복제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졌다.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모호해서 인간의 사고, 즉 지각체계가 르네상스시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작품은 숭고미 없이 쇼윈도에 전시되어 사람들에게 언제든 즐거움을 준다. 작품이 갖고 있던 Aura는 파괴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아도르노는 천박하게 보았고, 벤야민은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보았다.

현대에는 모든것이 담론화, 즉 텍스트화 되어버렸다. 텍스트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미술학자들은 예술이론을 인문학의 한 줄기로 규정지었다. 영화, 그림, 색 뿐만이 아니라 오묘하고 복잡한 세계를 직선적으로 대패질해서 투명하고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우리는 담론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경험하지만 이러한 감각적인 조우, 이미지는 담론화되어 점차 지워진다. (한 예로 파랑색은 빨강, 검정이 아닌 색으로 구별되는 것)기호화되는 것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있는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텍스트가 초점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면, 형상은 엇나간 것이다. 형상은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이며 인상파 화가들이 표현하고자 한 시시때때로 변하는 진짜 세계, 순간적인 인상(impression)이다. 담론화되기 이전의 주관이고, 형상에 대한 정의는 있을 수 없다. 비담론, 비언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맑시즘도 자본주의가 담론화시킨 것이다. '사과'는 지칭이 아닌 배가 아니고 포도가 아닌 어떤 과일이라는 개념이다. 원초적으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디코딩할 수 없는 부분들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형상이 없는 이데올로기적 세계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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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악몽  (0) 2009.12.02

죄책감

Posted 2009. 12. 4. 16:42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학]을 읽고 남은 한마디는 '세계시민이 되어라'다. 

당시 나는 열혈대학생으로써, 이런저런 집회도 참석하고 미약하게나마 도로점거도 해보았고, 매주 월요일마다 선배,동기들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사,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었다. 문득문득 드는 회의감은 '우리라도 해야 아주 조금이라도 변한다.'라는 선배의 설득으로 꾸욱 눌렸다.

왜였을까. 선배들은 미루고 미루던 군대를 가야만 했었고, 취업을 해야 했었고, 나름 포함한 동기들은 사회과학보다 술과 사람을 더 좋아했었고, 나는 어린 후배들을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약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등록금은 계속 올랐고,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탄핵위기까지 몰아넣었고, 등등의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이명박이 결국 대통령이 되면서 나는 끝끝내 놓지 못하던 헛된 희망을 버렸나보다. 

고진이 말하는 '세계시민'은 내 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까지도 고려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했다. 우리는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더 나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나 하나만으로도 정말 세상은 조금 더 살기좋아지는 것일까? 2년 전 나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으로 이용해먹어야겠다고. 가난했던 우리가족이 지금처럼 풍요로워진 것은 아빠가 대기업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고 우리 가족은 대기업의 수혜를 받아먹고 살고 있다. 나와 동생은 등록금 걱정 한 번 해보지 않았고, 생계형 알바는 커녕 줄타고 들어가서 놀멍쉬멍 경마장 알바(비정규직이다.)를 해서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정원딸린 집에 사냐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로 부족함 없이 놀고먹고공부했다.

재벌이 되길 바란 적도 없고, 가까이 지내길 바란 적도 없다. 내게 주어진 소소한 것들을 누리고 향유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자꾸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조금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뻔뻔한 기업에, 멍청한 정치인들에게 자꾸만 기대를 해보라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소리가 들린다. 정의는 무엇일까? 왜 내가 갖고있는 것을 누리고,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빼먹는 건 왜 진리가 될 수 없는걸까? 단지 내가 아주 조금 더 가졌다고 해서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훨씬 많이 가진 사람들도 당당히 베풀지 않는데. 내가 바닥까지 내려간다 해도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없을텐데, 나는 왜 내밀어야 하는가? 세상은 변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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