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견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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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작가들을 시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엘프리데 옐리네트의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읽을 땐 정말이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실용 경제서가 아니고서야 끝까지 읽어내고야 마는게 버릇이어서 [피아노-]를 볼 때에도 무지 괴로웠지만 끝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책을 거의 2/3가량 읽었을 때부터 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의 책을 처음 시도할 때면 참 그 문체가 눈에 잘 읽히지 않아서 적응하는데에 시간을 약간 필요로 한다. 일기장인 것 마냥 있는대로 배설해내는 소설아닌 소설들이야 전혀 적응할 필요가 없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소설들이 있다. 미카엘 하네케가 선택한 작품이란 이유 하나로 책을 선택하긴 했다만 읽는 내내 적응하고 싶어서 혼났다.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방관자적인 태도로 난 절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멀찌감치 물러 서 있다가 마지막무렵에 책을,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단 것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나 왜 딴 얘기하고 앉았니,
[고리오영감]도 도전하고 싶었던 작품 중의 하나로 기꺼이 넣어 줄테다. 발자크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렇지만 책 제목부터가 ~영감이라니 정말 손이 안가는 이름이다. 재미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마구 온다. 그러나 의외로 이 작품은 순수한 젊은 청년과 화려하지만 뒤가 구린 사교계의 이야기다. _ 물론 이름만큼이나 불쾌한 영감의 이야기도 주를 이루고 있긴 했다.
한 사람을 두고 '으젠', '라스티냐크', '청년', '법대생' 등등 다양한 주어를 쓰는 것을 한시간을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 시간동안 도대체 이 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오리무중이었을 수 밖에. 또한 부르짖고, 크게 외치고, 풀썩 쓰러져버리는 주인공들 탓에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매우 흥미로웠다.
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나라면-'을 염두해 두고 읽는다. 그런 면에서 가장 공감을 했던 인물은 바로바로 보트랭을 밀고했던 '늙은' 노처녀와 아저씨, 푸아레와 미쇼노양. 나도 삼천프랑을 준다면야 ㅋㅋㅋ 하면서 그들이 한대로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블로그의 이름을 따왔다. 나처럼 세속적이고 비참한 인간들)
갑자기 귀찮다................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자크가 자신은 굳이 대중의 편이라고 했다고 하던데 맞는 말인 듯 하다. 그가 대중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면 부르주아와 귀족과 민중을 극명히 대비시켜 놓은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드를 계속계속 생각했다. 불우하고 비참한 빈곤한 돼지들, 화려하되 가난했던 사교계의 인사들을 문학 작품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약간 과장됨에도 불구하고 아주 따스한 시선으로-
근데 왜 사드가 생각났을까? 같은 프랑스니까?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서? [숏버스]에선 이야기를 섹스로 풀어내더군. 같은 소재로 반대지점에서 세상을 표현해낸거라고 본다. 여튼 사드가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비참한 세상이 고리오 영감의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서 사드가 자꾸 생각나나 보다.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발 붙이고 있겠다고 바둥바둥 거리는 사람들이 별거냐, 우리 모두가 그러고 있다. 인간들이 사는 지구 땅바닥이라는게 늪이 아니면 얼음이거든.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비참해질 수도, 그럼에도 행복할 수도 있고 어디에 서 있는지 상관 없이 으젠처럼 소신껏 인간의 행동이라고 정해진 길을 의젓하게 걸을 수도 있는거다.
가끔은 이렇게 완벽한 주인공이 나와서 환상문학인 작품도 읽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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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려다가, 이왕 먹을 거 재밌는 걸 보면서 먹자. 란 생각에 이런 저런 오락프로그램을 골라보다가 시덥잖아서 가볍게 판타지영화나 한번 땡겨볼까 싶어서, 고른 영화였다.
휴일 아침을 스펙터클하고 신나게 맞아볼까- 하는 나의 기대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첫 자막에서부터 무참히 깨지고 말았고, 무슨 아침을 1시간을 넘게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깨작댈 정도로 입맛이 급격히 떨어졌다. (밥이 문제가 아님) "마케팅이 안티-"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오필리어와 세개의 열쇠'라며 어린이를 현혹하는 글귀가 점차 황당해지는 약간의 적응기를 거친 뒤에야 영화에 빠져든다.
분장이 참으로 예술이다.
CG보다 분장에 더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판'
처음에는 이건 뭔가요, 싶을 정도로 허접해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이 생명체(?) 연기 참 잘한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몸에서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CG였다면 그 소소한 감정과 느낌들이 이렇게까지 잘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편인데, 윽박지르면 무섭다. 그러나 '판'은 약과!!
이분 어쩔 것임?????????
먹던 밥알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무섭다.
원래의 얼굴에는 콧구멍 2개와 입만 있는데, 잠에서 깨어나며 앞접시에 놓여있던 눈알 두개를 손바닥에 붙어있는 눈알 구멍에 집어넣고는 저러고 오필리어를 쫒아온다. 또 (이미지를 구하지는 못했는데) 미친 주먹보다 더 큰 구더기? 바퀴벌레? 무리들과 침을 쩍쩍 흘리는 대왕두꺼비는 정말 후덜덜- 입이 딱 벌어진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떻고.
비주얼이 정말 감각적으로 잔혹하다.
영화를 보면서 용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저 괴상한 괴물들에 대항하는 오필리어의 용기,
내전은 끝났다며 자신들을 반란군으로 칭하고 쥐잡듯이 잡으러 다니는 군대에 대항하는 혁명군의 용기,
자기 한 목숨 중요해서 초조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사의 용기,
악독한 대령의 용기,(이것을 용기라 칭할 수 있다면)
이 오바스럽게 잔혹한 이야기를 눈 똑바로 치켜뜨고 지켜보는 나의 용기.
진정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 용기내어 힘들게 시도했는데 실패했을 때가 두려워서 어디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이마저도 아니라면 난동일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수만가지 생각들 속에서 갈피를 못잡는 건 가끔 행복하다.
이 영화를 보는 수만명의 사람들 역시 각자 따로따로 다른 수만가지 생각을 했을 터-
어디를 봐야할 지를 아는 사람에게로만 한정되겠으나, 이 어두운 이야기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겠다고 자신하시는 분들께 강추해드립니다. 이만큼 지성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이왕이면 19세
+ 이왕이면 부제도 삭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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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리즈 영화에 알러지를 갖고 있는 나는 딱 하나 즐겁게 본 시리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파이더맨] 시리즈 였다. [아이언맨]이나 [배트맨] 처럼 돈으로 쳐 발라서 화려하게 화면을 치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히어로즈]의 주인공들처럼 초능력을 팍팍 쏴주는 것도 아닌 스파이더맨은 셀카를 찍어서 신문사에다 팔아 돈을 벌고 무기도 고무옷 하나다. 고무옷이 힘을 조금 주기는 하지만 악당에 비해서는 너무 약해서 시종일관 안쓰럽기만 하고 심지어 악당을 이길 수 있을지도 초조한데, 이게 스파이더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시리즈의 감독인 샘 레이미가 [드래그미투헬]의 감독을 맡았단다. 여전히 인간적인 냄새를 폴폴 풍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나 대신 지옥불에 불탈 사람은 누구인가' 를 다크써클이 가득한 눈을 치켜뜨고 밤새 고민하는 장면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영원히 지옥에서 썪을만한 영혼을 가졌는지의 물음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서 해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평소 인간의 악한 점을 더 자주 보고 가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혐오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의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화살표를 던지면 금새 그 당사자가 안쓰러워지는 것이다. 아, 벌레만도 못한 인간은 있을지언정 벌레만도 못한 영혼은 없을지리니.
깜짝깜짝 놀래거나 엽기적이고 구역질나는 장면들이야 공포영화니깐 그렇다 치자. 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무섭고 토할 것만 같은 장면들이 한 가득이었다.
분위기를 잔뜩 조성해놓고 너 이제 놀랄 시간이야.. 라고 놀리듯 말해줘서 잔뜩 놀랠 준비를 해놔도 진짜로 흐읍! 하고 놀라버린다. 그만큼 기상천외하게 관객을 놀라고 무섭게 하지만(사실 이건 관객이 겁 없으면 안놀라겠지, 지극히 개인적이다.) 금방 또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내서 픽 웃어버리게 만든다. 이건 정말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밖엔 말 못한다. 게다가 벌레는 정말이지 구역질나서 물 한 모금을 삼켜야 했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라님께 무서워서 목이 바짝바짝 마를지도 모르니 마시라고 장난치듯 말해놓고는 내가 다 마셔버렸다.
서양 공포 영화에서 이렇게 오싹해본 것은 [스켈리톤키]이후로 처음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미신과 주술, 악령, 귀신 같은 것에 공포심을 느껴서인 듯 하다. 할리우드는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대는 블러드 호러물에 스스로도 질렸는지 자꾸 일본이나 한국의 공포영화를 가져다가 만들어대더니 안되니까 돌파구를 마련한 듯 하다. 꽤나 괜찮은 돌파구라 생각한다. 동양적인 공포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서양적인 주술을 끌어다 쓰니 생경한 공포도 아닌데다가, 엽기와 호러도 부분적으로 잘 배치해 두었으니 꽤나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부터 약간 오싹한데 표지 한 번 정말 잘 뽑았다.
흑, 지옥에서 불타오르는 저 불길에 휩싸인 여인네를 보아라,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길래 이렇게 예쁜 여자가 지옥불에 휩싸이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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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비야씨의 세계여행기, 레포트 쓰려고 읽었던 캠핑카유럽여행기, 버스타고 여행하는 어느 가족이야기 이렇게 세개의 여행기를 읽었었다. 여행기를 읽으면 나도 너무 떠나고 싶게 만들거나, 특히 내가 가본 곳의 여행기는 내 추억을 망치거나, 앞으로 가볼 곳의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언제부터인가 여행기 읽는 것을 약간 꺼리게 되었는데, 몇 년전에 읽었던 버스타고 여행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불평만 가득해서 책을 읽는 나까지 피곤하게 만들길래 이 때부터 여행기는 잘 안 읽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여행기와 비교해봤을 때 이 책이 더 뛰어나다거나, 유별난 매력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얘기할 수가 없겠다. 여행기 자체를 잘 읽지 않으니까.
정말 순전히 우연하게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어서 약간의 온라인 친분을 쌓다가 마침, 책을 내셨다고 하여 사서 읽게 되었는데 (MBTI 결과에도 나왔듯이 선생님이 좋으면 싫어하는 과목도 좋아하게 되는 성격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블로그에서도 엿보였던 작가의 밝은 성정이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내내 상쾌한 바람이 귓전을 맴도는 듯 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 생각을 그대로 글로 적어둔 듯한 남의 글을 볼 때 나는 쾌감을 느끼며 작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작은 책이고, 사진이 많기도 하고, 블로그에서 본 글도 몇 있어서 내용적인 측면을 많이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경험과 생각을 짧고 자유롭게 적어둔 것이 많이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이 그대로 출판된 것만 같은 부분도 많았고, 내가 얕게 생각하고 말아버렸던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깊이 통찰한 결과를 적어둔 부분도 많았다.
혼란스러운 중동지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정치사회적인 소소하지만 깊은 생각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존중을 솔직하게 털어 놓은 부분들, 긴 여행을 하며 점차 쌓이는 경험에서 오는 통찰력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여행이 일탈이나 도피가 아닌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내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지금의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야기, 유럽에 대한 작가의 생각, 코믹한 굴욕 에피소드 등 때론 심각하게, 때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중동으로 가는 여행객이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제일 친한 친구도 지금 중동으로 여행을 가있어서 나도 이제서야 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참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우리나라는 어째 유행이 너무 중요해서 여행도 유행따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소한 지방의 자유로운 여행기를 보여주며 틀에 박힌 일상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알다시피 틀에 박힌 일상에 틀에 박힌 여행기는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만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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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들 중에는
최악으로는 빨래 쥐어짜듯하는 듯 해서 유치하고 울기 싫어 죽겠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고,
중간으로는 정말이지 너무 왕창 슬픈 내용이라 울지 않을 수 없는 경우와 아주 조금만 슬퍼서 눈물이 고이는 경우,
최고로는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뭔가를 건드려서 엉엉 울음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민기가 엄청 멋지구리하게 나온다는 스포만 접수하고 봤는데도 이민기가 어케 될지 빤히 보여서 초장부터 눈물이 고인다.
아, 이거 지금 웃긴게 나중에 다 울겠구나 싶어서 영화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중간의 경우로구나~
설경구랑 하지원, 둘다 좋아하는 배우라서 봐야지 하다가 못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제 예상치 않았던 휴가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덕에 보게 된 영화 [해운대]. 전날 [투모로우]를 봤다는 친구는 피식피식 웃으며 가소로워하는데 애초에 영화코드가 맞지 않은 친구였으니 아예 투명벽을 세워놓고 영화에 집중했다.
처음에 약간 어색할 뻔 했던 하지원과 설경구의 부산사투리는 어느덧 농익어 부산친구들을 연상케했고, 대사나 목소리들이 감성을 톡톡 건드렸다. 내가 막 우니까 친구가 자꾸 옆에서 놀리는 눈으로 쳐다봐서 짜증이 무지막지하게 나서 오기로라도 안울어야지 했는데도 계속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걸 보면 정말이지 영화 참 슬프다. 무섭기도 하고.
사실은 며칠 전에 해일이 오는 꿈을 꿔서(아마도 해운대 예고편을 봤던 날이지 싶다) 영화 속의 몇십미터의 파도가 남일같지가 않았다. 꿈속에서 겪어봤던 실제적인 공포였으니까. 차라리 폭탄이 날아오면 빵 터져서 금새 죽겠지만 익사하는 건 아무래도 몇분의 고통이 엄청날테니 좀 더 무섭다.
한국이 지진해일안전지대라는 건 이미 거짓부렁으로 판명된지 오래이다.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소재 선택이 괜찮았다. 연기도 당연히 좋았고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코믹요소도 재미있었다. 단 한가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의 빵빵 터지는 급의 재난영화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다. 재난 자체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 그 재난으로 인한 인간애를 그린 영화다.
사실 대부분의 혹평은 이러한 기대에서 비롯되던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한다면 지금까지 자연재해의 피해가 미미했다. 바탕이 될 사실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쪽으로는 상상해볼 여지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재난영화를 만든다면 초점은 자연히 '재난'에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재난으로 인한 사람들의 애정, 안타까움, 희생같은것에 맞춰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한국 정서에도 훨씬 맞고, 수많은 관객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웰메이드가 아니라고 비판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자본과 기술력이 헐리우드에 비해서 떨어지고, 우린 이제 초기단계임을 잘 알면서 어떤 CG를 기대했으며, 해일이 뭔지, 지진이 뭔지 직접 눈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면서 어떤 대단한 재앙이 한반도에 내릴지 기대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한 기대는 잠시 접어두고 지금 당장 사무실 바깥, 학교 강의실 바깥 창문에서 수십미터의 파도가 덮쳐오면 내가 어떻게 할지, 누구에게 전화를 할지, 누구를 구해야할지를 상상해보며 영화를 봤으면 한다. 죽음 앞에서 어떤 미운 사람인들 그 순간엔 더 사랑하고싶어서 미칠 것 같은 그 마음을 상상하면서.
[해운대]에는 메가쓰나미를 위한 것도, 일찌기 정보를 접하고 도망갈 수 있는 윗사람을 위한 것도 아닌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음 비우고 2시간, 재미있게 영화 보고 주위사람을 한 번씩 더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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