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9:00 AM
샤워하다가 머리를 감기 위해 머리를 숙였는데 순간 어지러워서 비틀했다. 이러다 골로가는거 시간문제다. 오렌지 소다 슬러시를 쭉쭉 빨아마시며 드러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2. 07:00 AM
술에 취해서도 천장 바뀌면 잠설치는 버릇이 나와서 선잠을 자다가 결국은 첫차 시간을 알아 보고 인사도 없이 친구집을 조용히 나섰다. 보통 새벽엔 버스가 빨리 지나가버려서 기다리며 전전긍긍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것 같아서 반대편 방향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나의 버스가 지나간다. 운도 없지 싶었지만 별 수 있나. 일요일 새벽이라 그런가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안온다.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해져 참을 수가 없어서 드디어 지하철이 도착하는 순간 화장실을 찾아 지하철역을 나서야했다. 그러고보니 이놈의 지하철역에는 화장실이 없다.
다음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 역에서 내려 오렌지쥬스를 찾아 구석구석 편의점을 뒤졌으나 문을 연 데가 없다. 스타벅스에는 오렌지쥬스가 없단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우리 가게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오렌지쥬스가 있는데, 정말 내일 일 나가면 백개 쟁여놔야지 다짐을 몇번이나 하며 겨우 편의점을 찾아 오렌지 슬러시를 샀다.
#3. 03:00 AM
이 동네에 단 하나 있는 한국펍(?)은 이곳 애들에게 피자로 유명한데, 친구들도 모두 술마시다 배고프면 이곳으로 간다고 한다. 가끔 한국애들이랑 와서 소주 마시던 곳이 새벽 2시가 넘으니 피자 먹는 젊은 캐네디언들로 그득그득. 예전에 외국애들은 해장국도 없이 어떻게 해장하나, 햄버거나 피자로 해장하면 그게 되나, 했었는데 호주에 다녀온 후로는 어느새 술 취하면 햄버거를 찾게되는 날 발견했다. 그러다가 이젠 피자까지.
술 취하면 미친 귀소본능이 발동하여 10분거리에 10불가까이 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서라도 집에 오려고 하였으나 돈이 없다. 친구에게 빌리려고 했는데 친구도 돈이 없다. 일단 친구의 집으로 갔는데 친구의 애인이 잠도 안자고 기다리고 있다. 예전 애인이 나 술먹는거 정말 싫어해서 술 마시는 날마다 싸워대서 그 트라우마 때문에 괜히 내가 덜컥 했는데, 이 애인은 그런게 없다. 사실 말이 별로 없어서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도 잘 모르겠다. 친구가 소파 편하고, 이불도 있고, 돈도 아낄겸 좀만 자고 아침에 가라고 애기 어르듯이 달래는 목소릴 들으며 잠들었다.
#4. 12:00 AM
모르는 애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한다. 도대체 할로윈 때 얼마나 많은 애들을 만난거지? 게다가 가게에 자주 오는 멋쟁이 중국인 필 찬도 만났다. 내가 볼 땐 아무리 봐도 별론데 친구들은 모두 멋지다고 난리. 당연하게도 백인여자애들 3명이랑 함께 있다. 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는 친구들 발견하곤 인사하고 술마시고 그러니 마치 학교다닐 때 같다. 학교다닐 때 후문 술집에 앉아있으면 꼭 아는 테이블 몇개는 있었는데.
한참 놀다가 애들이 배고프다며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어중이떠중이들이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건다. 항상 이렇게 호의를 보이며 친절하게 말 거는 애들은 좀 덜떨어진 애들이다. 멋진 애들은 노느라 바쁘니까.
#5. 09:00 PM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나이트클럽에서 대충 골반흔들며 박자만 맞추는 정도의 춤을 추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춤을 구사한다. 손 끝부터 발 끝까지 자기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저절로 춰지는 것 같기도 했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예쁜 애가 춤까지 잘 추니 반하겠다. 예쁘다. 참. 셋이서 정말 정신없이 놀았다.
그러다 앉아서는 또 운다. 자기 자신이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예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추고, 세상에 뭐하나 바랄 것 같지 않은 애가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 다 똑같구나 새삼 느꼈다. 같이 앉아서 위로해주고 나도 그렇다고 하고 어쩌고 하다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애들이 항상 취하기만 하면 나한테 deep connected라고 하는데, 이 말이 나는 참 좋다.
이렇게 놀았는데 아직도 9시밖에 안됐다니. 풀린 눈으로 아직도 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며 신나서 술을 사러 갔다. 펍에 가기 전 펍에서 마실 술을 물통에 담아가겠단다. 예전에 밴쿠버에 친구 놀러왔을 때 저그 시켜서 거기에 팩소주 부어 마시며 신나했었는데 그 때 생각 난다. 이 친구들은 정말 자주 한국에 있는 친구들 생각나게 한다.
#6. 07:00 PM
드디어 counter protest 시작이다. 피켓 들고 온 사람들도 많고, 트렌스젠더인지 그냥 여장한건지 모르겠는 예쁜 남자들도 있었고, 피너스 쿠키를 먹지 않겠다는 레즈비언 커플도 있었고, 아이들도 많았다. 이 동네가 내륙이라 그런지 좀 보수적이라고 하던데, 처음 도착하자마자 봤던 시위가 교회에서 주동하던 낙태반대시위였으니, 뭐. 그런데 친구들 덕에 이런 것도 구경해보고, 쿠키 나눠주면서 낯선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고, 완전히 오픈마인드 분위기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쿠키에 경계심을 보이는 사람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Spread Love, No hates. 뭐 이런거였는데, 같이 일하는 게이 친구의 초대로 쿠키까지 구워갔으나 친구는 보지도 못했다. 이 친구는 얘기하는거 들어보면 애인도 참 많고, 인기도 많던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굉장히 강한 친구 같다. 뭔가 기초공사가 탄탄히 잘 되었다고 해야 하나.
여튼 날씨도 춥지 않았고, 우리의 피너스 쿠키도 금방 다 동나서 신났다. vegan인 애들도 많고, 넛 못먹는 애들도 참 많더라.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술 마시느라 다 까먹었다.
#7. 03:00 PM
어제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counter protest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를 미리 하자며 친구가 집에 좀 일찍 오래서 갔는데, 피켓이나 만들려나 했더니 쿠키를 굽고 있다. 태어나서 빵 만들어본적도 한 번도 없는데 왠 쿠키. penut shape cookie 만들자고 해서 땅콩모양이 뭐 특별한가 하면서 응, 그래. 했다가 나중에 다시 땅콩모양으로 만들면 되는거야? 이랬더니 친구가 빵 터지면서 피너스쉐이프쿠키란다. ㅋㅋㅋ 어쩐지 아까 피너스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쿨하게 반응해서 혼자 놀랬다고. ㅋㅋㅋ 가끔 내가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서 더 웃긴게 많다고 한다. 영어도 못해서 답답할텐데 왜 맨날 놀아줄까, 참 고맙다 생각했는데 나름의 매력이 있나보군.
쿠키도 만들고, 케익도 만들고, 맥주사와서 맥주도 좀 마셔주고, 고양이랑도 좀 놀아주고, 음악도 듣고, 친구 사진도 보고,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집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작품집에 멋진 작품들 많았는데, 오랜만에 마음먹고 가져간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서 다음에 찍어와야겠다.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라고 벌써 멋진 작품들은 누군가 다 만들어두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