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퉁퉁 부은 채로 일어났다. 세상에, 그렇게 운 적은 오랜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거울을 보곤, 쌍커플 수술을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2주도 안만난 친구에게 그만 만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예전 사람을 떠올렸던 건 이 친구를 만나며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운건 아닌데 그래도 익숙한 것은 익숙한 것이라, 이 친구와 뭘 하든 생경하기만 했고, 이게 아닌데. 하는 위화감만 들뿐이었다.
내 애인은 그 사람인데, 너는 누구지.
하지만 그 낯설음과 위화감마저도 외로운 내게는 따뜻함이었기에 행복했었다.

더욱 더 커진 허전함 때문인지, 그 친구가 받지도 않았는데 없어진 나의 마음 때문인지,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울며 예전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원래 난 전화를 잘 하지 않고, 그 사람은 아예 받지도 않지만 어제는 왠일인지 계속해서 전화를 했고, 그 사람은 받아주었다.
일 하는 도중이라고 했고, 시험 기간이라고 했고, 통화 도중에 간간히 일하는 말이 들려왔고, 요즘 많이 짜증난댔고, 농담도 했고,
잘 지내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전화 받는 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통화를 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것인 것만 같아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많이 슬펐다. 난 누구 때문에 슬픈지 모르겠다. 날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2주나 날 행복하게 해줬던 새로운 사람 때문인지, 지푸라기 하나에 온 몸을 내던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발버둥 조차 치지 않고 가라앉고만 있었던 나 때문인지, 똑같이 좋아했는데 어떻게 너만 힘들겠냐고 말하는 예전 사람 때문인지. 

전화 하는거, 문자 보내는거, 메일 쓰는거 다 마지막이라고 약속했다. 이렇게 정리가 되어 가나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거라고 예상하며, 좋아하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눈을 뜨는게 새삼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당분간 행복하다 말하는 날은 없을 거라고 예상하며 팅팅 부은 눈을 뜨는 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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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Posted 2010. 10. 14. 18:30

잠이 오질 않아.
떼시스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1996 / 스페인)
출연 아나 토렌트,펠레 마르테네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상세보기



[떼시스]의 영향이 크다. 괜히 봤어, 괜히 봤어, 괜히 봤어.... 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실제로 스너프 필름 유행일 때 다운 받아봤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정작 잔인한 장면은 없으면서도 끝까지 사람 심장 벌렁거리게 만든다. 정말이지 영화 보는 내내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압권은 마지막 장면. 정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폭력과 쾌락은 정녕 이어져 있는 것인가. 안그러면 안되나? 왜지. 난 단지 학문적 이유를 위해서 [소돔 120일]을 읽었는데, 그것이 과연 학문적 이유에서였을까. 내게 가학적인, 혹은 피학적인 성향은 없을까. 폭력과 쾌락은 뗄 수 없는 관계일까. 사드의 작품에 붙인 역사적 해석은 일종의 자기합리화일까. 이것은 어느새 나의 문제가 되어 있다. [떼시스]의 그녀에게서 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게 정녕 공포스러웠는지도.

리뷰를 써 볼까 했는데, 생각이 도무지 정리가 안되서 못쓰겠다. 아직은.

이 곳에 쓴 글들을 살짝 훑어봤다. 우울해서 쓴 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있는 척 하면서 쓴 글도 몇개 있더라. 하지만 그 있는 척 하는 글들을 썼던 나가 지금의 나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것은 사실. 요즘은 아예 정신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고민이 많다. 이런 생활이 바로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인데 역시 난 빡센 대한민국 출신인가보다. 피는 못속여.



 뜬금없는 사진은 주왕산을 떠올리게 했던 밴프의 어느 폭포. 주왕산에서 먹던 더덕 동동주가 그립습니다. 배고파. 세시 반이다. 얼른 자자.

쓸쓸한 날들

Posted 2010. 9. 26. 03:02

난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걸 즐겨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만 4개월 정도 새로운 사람만을 만나며 살다보니 지금까지 내가 추려왔던 관계의 결과물이 얼마나 가치있었던 것인지를 새삼 느낀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밴쿠버에 놀러와서 며칠 함께 지내다가 돌아갔는데, 친구는 캐나다가 그리워서 미치려고 하고, 난 그 친구가 그리워서 미치려고 한다. 친구, 와 함께 보냈던 시간만큼 행복하지가 않은거다. 이제는. 공공연하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며 지금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외로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그렇다고 해서 만나지 않으면 그 공동이 더 커지니 어쩔 수 없이 또 만나 보고, 만날 땐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와서 집으로 돌아오면 더 깊어지고. 이것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다. 

어제 새벽에는 오랜만에 한국의 친구와 통화를 했다. 보통의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이곳에서 어영부영 놀며 시간 보내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그래서 통화를 자주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영양가 없는 술자리를 마치고 혼자 집에서 돌아온 나를 견딜 수가 없어져서 그만 친구에게 전화를 해버렸는데, 역시나 얼른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난리다. 며칠 전 같았으면 무시해버렸을 그 말이 왜 이리 가슴에 와서 박히는지 나는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버리고 싶어졌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필요한건지, 한국이 필요한건지, 내 마음의 블랙홀이 너무나 커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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