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푸쉬카르는 델리에서 기차로 7시간만 이동하면 되는 가까운 곳입니다. 인도를 가본 사람이라면 모두 입을모아 말하는 것이 단 7시간 거리의 도시라도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대도시인 델리와는 달리 푸쉬카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분위기가 정말 현격하게 달랐는데요, 대단히 엄격한 성지여서(뭐 3대 성지라나 그렇다네요.) 육식은 물론 술 반입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던 제가 채식에 적응했음에도 그 좋던 푸쉬카르에 사흘밖에 머물지 않은 것은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푸쉬카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아주 귀엽게 생긴 남자애였습니다. 동정심이 물넘치듯 흘러서 바닥에서 자는 인도 꼬마아이를 보고는 선뜻 자기의 침대칸을 내어줍니다. 그러곤 자기가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잤어요. 간밤에 쥐를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기세에 놀란 제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어찌나 신나게 하는지 전 서양아이가 바닥에서 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까먹을 뻔 했습니다.
인도인을 좋아하지만, 인도인과의 돈문제에 대해서는 까다로웠던 저와 약간 부딪치기도 했는데, 함께 사기를
당하고서는 그제서야 이럴 줄 몰랐다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요. 재밌는 것은 매번 믿고, 매번 사기를 당하는데, 그럴 때마다 처음이라는 듯이 놀라는
겁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푸쉬카르가 다 내다보이는 성 꼭대기에 올라가 맨발벗고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하시시를 담배에 섞어서 피우는데 바람이 살랑 불면 참 그만한 기분이
또 없더군요.
친구의 이름은 정말 신기하게도 하수스, 영문으로는 Jesus였습니다. 일정이 달라서 푸쉬카르에서만 함께 다녔었는데도, 아직도 많이 생각나는 친구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필름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다녔다는 겁니다. 그나마 있던 50미리 렌즈(MF였지요;)가 고장나있는줄도 모르고, 초점이 어긋난 채로 계속 찍은 것들이니 아쉬운 사진이 많아요. 요즘 좋은 카메라들이 많이 나와서 깨끗하게 나온 사진들을 보면 제 사진이 초라해지는 것 같습니다. ㅎㅎ 먼지도 무척 많아서 흐릿한 사진에 일조했어요.
푸쉬카르는 다양한 수공예 악세사리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악세사리와 다양한 색깔에 정신을 못차리는 전 하루 생활비만큼의 쇼핑을 해대곤 했는데요; 노랑꽃 원피스와 구슬 목걸이, 알록달록 실귀걸이, 실+구슬 목걸이, 초록색 티셔츠, 주황색 바지 등등 정신을 못차리고 사댔습니다. 가격도 싸고, 촌스럽고 화려한 옷을 마음놓고 입고 다닐 수 있을 때가 여행할 때 말곤 별로 없으니까요.
종종 인생의 목적, 여행의 목적, 독서의 목적이 무엇이냐, 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언제고 머뭇거리는데, 별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좋으니까 하는거죠. 그래서 많은 도시를 단기간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그저 이리저리 둘러보고 목적의식 없이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푸쉬카르에 있는 수많은 성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건물은 어떤 양식인지, 그 도시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좀 더 많이 알고갔으면 많이 배웠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지만, 만약 다음에 또 푸쉬카르에 가게 된다고 해도, 마을의 왠지모를 경건한 분위기를 즐길 뿐, 뭔가 더 알아보거나,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 낙타사파리는 동부 끝자락에 있는 자이살메르나 쿠리에서 많이 한다고 해요. 다녀오신 어떤 분들은 별이 태양만하다고 하더라구요. 짧은 일정에, 게으른 저와 친구는 푸쉬카르에서 1박 2일 낙타사파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에게 걸려들어서 낙타를 타기로 합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저 엄청나게 큰 낙타를 타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낙타는 다리가 무척 깁니다. 그래서 앉아 있는 낙타 위에 올라타야 하는데요, 낙타가 앞다리인지 뒷다리를 먼저 펴면 몸이 급격하게 기우는데, 심장이 덜컹할 정도로 무섭더군요. 떨어지면 끝장. ㄷㄷㄷ
낙타를 타곤, 당황스러워보이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낙타가 아프다는 듯이 끼힝힝(?)거리면서 계속 울어서, 제가 너무 무겁나보다고 놀렸거든요. 사막이라기보다는 황무지에 가까운 푸쉬카르 변두리의 마을로 갑니다. 그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의 집에 가서 추위를 달래기 위해 모닥불 앞에서 깔깔이와 스키보드복으로 무장하고는 몰래 공수해온 맥주도 마시고, 너무 착한 아주머니와 할아버지가 해주는 밥도 먹고 놀았습니다.
관광객은 하루만 머물고 떠나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나는 관광객일 뿐인 제 손이 차다며 꼭 잡아주고, 많이 먹으라고 난도 많이 만들어주고, 코리엔더도 팍팍 뿌려주고(-_-), 아무 가식 없이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와 전 그저 행복해서 감동에 감탄을 하며 좋아했는데요, 장사꾼이 그럽니다. 10명 정도의 한국인 단체 손님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춥고 음식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며 환불해달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자기가 많이 상처받았다네요. 좀 더 큰 기대를 하고 왔다면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푸쉬카르는 낙타사파리로 유명한 곳이 아니고, 약간의 맛배기만 보는 정도일 것이라는 것, 낙타사파리를 할 때는 사막에서 자기 때문에 매우 춥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아주 저렴했거든요.
돌침대 위에 침낭을 펴고, 옷을 엄청나게 껴입고, 어둡고 추운 방 곳곳에 촛불을 켜놓고 신혼여행 분위기를 내며(여자끼리 참,,)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면서 불평은 커녕 잘만 놀다 모닥불 곁으로 온 우리는 조금 당황했어요.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길래, 선량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까. 한국 돈으로 하면 만원도 안되는 돈인데 말이죠.
인도에 도착한지 어느덧 보름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