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직관

Posted 2010. 6. 8. 08:23


난 분석력이 영 꽝이다. '분석'이라는 단어의 느낌도 싫다. 분식이라면 몰라도.

그런데 최근 놀랍게도 '제 분석 좀 그만 하세요.'란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들은 후에도 계속해서 분석하는 예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실로 묘한 일이었다. 사람을 분석하다니! 내가! 사실은 말이 분석이지, 아마 직관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는 사람의 정 반대 지점에 있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걸 그냥 말로 뱉어버리는 직관하는 타입에 가깝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서 발견한 날카로움, 연약함, 꼬리를 반짝 세운 고양이에게서 내뿜어지는 것만 같은 위협, 그러나 사실은 공포,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etc. 이런 것들은 그의 태도나 언행을 내가 기억하고 데이터로 저장해두었다가 분석한 것이 아니라 내 촉각이 그것을 감지한 것일 뿐일테다.

나는 보통 내가 상대방에게 느낀 것을 곧바로 말해버리고 마는데 이것은 고쳐야만 하지만 잘 안되는 중증이다. 지인은 내게 '니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를 생각하라.'고 조언해주었지만 이 조언은 언제나 일이 모두 끝난 후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번에도 역시 헤어져 집에 온 후에야 사과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나를 특별히 여기고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워낙에 '좋아하는 캐릭터' 찾아내기를 즐겨하기에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게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할 여건이 되지도 않았던건지 최근에서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더 최근에는 그런 사람이 꽤나 많았다는 걸 알아버렸다. 바로 윗 문단에서 조언을 해준 지인은 다시 '니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관계없이 너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만나도 충분하다.'고 다시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이 조언 역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 전에 없이 소심해져버리는 나를 북돋아주지는 않는다.

분석은 괜찮지만 직관은 위험하다. 덜 다듬어져있어서 거칠고, 그래서 상처주기도 쉽다. 때론 나의 직관이 절묘해서 상대방을 구원해줄 때도 있지만 때론 아픈 곳을 곧바로 찔러서 절망케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더냐. 아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연약하더라. 니 좋아하는 친구를 많이 곁에 두려면 본능에 충실한게 옳다고 여기지 말고 조금 더 이성적인 인간에 근접해 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Posted 2010. 6. 6. 04:38


비빔밥을 해먹었다.
비빔밥이랄 것도 없는게,  집에 있는게 계란이랑 베이컨밖에 없어서 계란 후라이를 반숙으로 하고, 베이컨을 구워 잘게 자른 후 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김이랑 일회용 미역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알버타 대학 인문 도서관에 다녀왔다. 인문 도서관이라는데, 어째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보다 더 크고 책도 훨씬 많은데 사람은 거의 없어서 괜히 짜증났다. 이 나라가 다 그렇다. 한국보다 훨씬 크고 자원도 많은데 사람은 적다. 꿈의 나라다. 일자리만 찾는다면. ㅎㅎ
 

* Beauty

지금은 민들레가 지는 시기다. 노란 꽃이 공원 곳곳에 피어있는 게 참 예뻐서 꽃이 지고 씨앗이 피면 하얗게 더욱 예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광경이 예쁘지만은 않다. 솔직히 말해 흉하다. 대머리 백발의 노인을 연상케한다. 하얗게 져가는 민들레를 보며 내가 아직 노랗게 예쁘고 젊음을 상기하고는 안도했다. 늙기 싫다. 늙어도 예쁘게 늙고 싶다. 하지만 이딴 생각을 늙어서도 갖고 있으면 꽤나 흉할 것임을 알고 있다.

요즘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고 있다. 맨날 읽다가 다섯장도 못읽고 졸지만(원서 읽다가 다섯장도 못읽고 졸아서 바꿨는데 여전하다.) 곰브리치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내가 막연하게 관념으로만 갖고 있는 것을 적확하게 문장으로 푼다.


   
 
 

뒤러(Albrecht Durer),
[어머니의 초상], 1514년.



독일의 유명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도 루벤스가 자기의 포동포동한 아들에게 가졌던 만큼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어머니를 그렸을 게 틀림없다.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니를 진실되게 그린 이 습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줄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뒤러의 이 그림은 위대한 진실성을 담고 있는 명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느낀 반감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 Queer

캐나다에 와서 무척 놀랐던게 게이가 많아서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모리스]여서 더욱 감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호주에 있을 때 게이퍼레이드에 갔다가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는데, 다시금 여기서 퀴어 피플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물론 성적 취향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전혀 없다. 나 역시 다른 여자들처럼 게이친구를 갖고 싶단 로망을 갖고 있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처럼 게이가 이민호처럼 생겨야 하고, 직업도 꽤나 괜츈해야 하고 게다가 알고보니 게이가 아니었고!!!!! 따위의 로망은 아니다. 그래도 과도기의 한국에서 '잘생기고 능력있는' 게이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긴 하겠다.) 하지만 요즘 계속해서 머리에 맴도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 말고 딱 봐서 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덥썩 움켜쥐고 싶은 단아한 허리라인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걸을 땐 여느 여자들보다도 예쁘게 걷는다. 걸음새 만큼이나 다리도 예쁘다. 정말 타고났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들이 불행한 어린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행운이었을까? 요즘 내가 이들에게 얼마나 집착하고 있느냐면, 어제 밤에는 막내동생이 커밍아웃하는 꿈까지 꿨다.

아무리 내가 열린 마음이라고 해도 내 가족이 퀴어라면.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 나는 그들을 동정하는 것일 뿐 사랑하지는 않는 것이 된다. 동정심을 하나의 악덕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분투하고 있다. 막내동생이 정말로 커밍아웃 하더라도 그를 두 손들고 지지할 수 있도록. (뭐 아직까진 그럴 기미는 없다만;)

허나 사람을 사랑하는 건 아직까지 내겐 힘든 일이다.

고통과 환희

Posted 2010. 5. 31. 13:09

볶음밥을 해먹었다.
감자와 양파와 빨간색 파프리카와 햄을 조각조각내어 버터에 살살 볶은 후 식은밥과 간장 조금, 깨 조금, 참기름 조금을 넣어서 빠른 시간 내에 섞은 후 불을 끄고 접시에 담아 고추장을 약간 곁들여 김치와 함께 먹었다.

혼자 밥을 먹으며 문득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생각은 마치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 처럼 참을 수 없이 터져나왔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떠나서 단지 그 출산의 순간에 대한 상상.  

난 아이를 낳고 싶다거나 결혼을 하고 싶다고 강렬히 원한 적이 없다.
행복해보이는 가족을 보면 '저 상태가 나의 미래가 될 리 없다.'고 여겨서 비롯하는 질투심이 생겨날 망정 부럽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생각은 최근 만삭을 한 여인과의 대화, 로스트에서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출산장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정도의 극심한 생리통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결국에는 의식에로까지 흐르게 된 것일테다.

대단하다는 출산의 고통이 물론 아직도 두렵긴 하지만 그 아연한 고통의 잔해에서 채 헤어나오기도 전에 미소를 짓게하는 그 관계의 힘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떻게 키울지 막연한, 차라리 암담하다고 해도 좋았을 상태에서도 쏟아져나오는 기쁨의 눈물. 그렇게 이어진 엄마와 아이의 관계. 그 환희의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고 변덕을 부려봤지만,

역시나 내 미래는 나조차도 아직 종잡을 수 없다.

다만 하지 않겠다고 닫아두었던 문을 열어두는데 만족하도록 해야지.


아침에 일찍 나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고는 어쩐지 기운이 쫙 빠져버려서 나가기를 포기하고는 옷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잠을 자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학교에 다니는 꿈을 꿨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친절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교실 곳곳에서 발견하며 흥분했다. 짝꿍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짝사랑 했던 친구였고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잘생겼었다. 이 모든 종류의 설레임에는 꿈 속에서는 아직 알지조차 못하는, 내가 미래에 좋아하게 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행복감도 은연중에 섞여 있었다. 이것은 무척 행복한 일인데, 요즘처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때에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학창시절 이후로 만난 또다른 좋은 사람들이 '존재함'을 무의식의 나는 잘 알고 있으니 꿈 속에서 느낀 행복감은 거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맨 뒤에 앉아 있던 내가 좋아하는 친구 중의 하나는 자기 소개 시간에 신데렐라 언니의 ost 중 한 곡을 불렀다. '불러본다.' 였던가. 꿈에서 깨서는 이 노래를 찾아서 들었다. 문근영의 눈물에, 그리고 아름다운 음색에, 애틋한 [신데렐라 언니]의 감정선에 나도 덩달아 눈물짓고 말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가 보던 단 하나의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였다. 이 드라마가 내 마음을 왜그렇게 건드렸던지. 걷잡을 수 없이 드라마에 중독되어가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언제나 그랬듯이 왜 좋은지에 대해 분석을 시도 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좋아하며 봤던 드라마로는 하지원이 나온 [황진이]가 있다. 황진이도 참 괴로워하고 아파하며 봤었는데 은조와 황진이에는 공통점이 있더라. 둘다 자기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을만큼 연약해서 언제나 매서운 눈초리와 독설을 자기방어 기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여리고 상처받은 모습이 무척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그녀들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그녀들의 독한 모습은 성격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을 하는 태도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은조가 주조를 일으키려 하는 모습, 황진이의 춤과 음악에 대해 완벽해지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 이것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천하태평의 성격을 가진 내게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그 주변부에 가깝다. 어리광부리고 틈만 나면 엉엉 울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할 줄아는게 발레밖에 없으면서도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맨날 넘어지기만 하는 서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동족혐오의 기질 덕에 서우의 캐릭터에는 전혀 몰입할 수 없고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진 은조와 황진이에게 거대한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좀 숨기고 싶다.
아프더라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숨기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숨기고 싶다.
열정적으로 일 하고 싶다.

친구는 내가 '이 음식이 맛 없을 줄 알았는데 맛있네' 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꿰뚫는다. 이것은 그 친구의 통찰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내 표정이 그만큼 모든걸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은조처럼 고통을 온전히 내것으로 삭힐 수 있길 바란다. 팍 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내게 고통은.

지금 이곳은 온도가 영하에 가깝고 계속해서 흐리고 비가 온다.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잘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고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서 죽은듯이 잠만 자고 게임하고 밥을 축낸다.

왜 동경하는 대상의 발끝에나마 미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왜 평소의 소망대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주변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지. 나의 의지라는 건 왜이리도 빈약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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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살 지역을 정할 때, 대도시는 피하고 싶었고, 너무 시골은 아니어야 하고, 한국 사람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걸 기준으로 했다. 무척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몬트리올과 로키 산맥 근처에 위치한 에드먼튼이 순위에 올랐다. 밴쿠버와 토론토는 대도시니 제외, 캘거리는 한국 사람이 너무 많고 별로 예쁘지도 않다고 해서 제외, 빅토리아는 무척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조그만 동네라 일자리를 구하기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제외했다.

에드먼튼이 록키에서도 가까운데다가 몬트리올에서는 프랑스어를 못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무척 어렵다해서 에드먼튼으로 정하게 됐는데, 무척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고,

꽤나 크고(서울 면적), 사람도 많은 도시다(그러나 인구는 서울의 1/10).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운데, 비가 와도 금방 그치니 걱정할 것 없고 보통은 햇빛이 좋다. 더워도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해서 기분이 나쁜 더위는 아니다. 물론 여름이 아니라 그렇겠지만. 다운타운 근처에서 지내고 있는데 다운타운에 모든게 모여있지 않고 여기저기에 중심가가 퍼져있다. 버스나 트레인 타고 가야할 정도. 유명한 쇼핑몰도 멀리 있다고. 차차 포스팅 할 예정. 건물 많은 것 빼고는 왜 다운타운인지 모르겠다. 뭐, 일하는 사무실들만 모여있는 호주의 캔버라 정도의 느낌???

워홀러들이 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아 ㅠㅠ 어째 에드먼튼에서 초기 정착하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무척 떨리고, 면허증 교환하러 가서는 불친절한 직원에 상당히 당황하기도 했던터라 앞으로 에드먼튼에 올 분들을 위한 정보 정리를 해두리라고 다짐했기에. 뭐, 다소 두서없지만 정리 시작.)

1. 은행계좌
2. SIN 카드
3. 핸드폰
4. 알버타 헬스 케어

1. 은행계좌

계좌를 개설 할 떄는 학생인 경우 뭔가 혜택이 있긴 한 것 같다. 큰 혜택은 아니고 뭐 수수료 같은거. 여튼 필요한 것은 여권, 워킹 비자, (2종류의 아이디가 필요한데 비자로도 그게 된단다. 그래서 따로 아이디가 필요하진 않을듯), 핸드폰 번호, 주소. 여기에서 뭔가를 할 때는 a piece of mail to prove your residency 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없기도 하고, 사실은 뭔지도 몰라서 계좌도 개설 못하는 줄 알고 좀 쫄았었는데 계좌 개설할 떄는 상관 없었다. Checking account 만들러 왔다고 하면 된다.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가서 담당자 만나러 왔다고 하고 기다려서 담당자 만나면 된다. 이건 어려울 것 없음.

2. SIN 카드

캐나다에서 일을 하려면 이 SIN 카드가 필요하다. 이건 재스퍼 에비뉴(Jasper Ave.) 를 따라서 오른쪽으로(그러니까 지도상에서 볼 때) 쭈욱 가면 Canada Place가 나오는데 들어가서 1층의 Canada Service 사무실을 찾으면 된다. 인포메이션에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가서 여권 보여주면서 신넘버 받으러 왔다고 하면 조금 기다리라 하고 이름 부르는데, 가서 물어보는거에 대답하고 임시 레터를 받으면 땡.

한 2주 정도? 뒤에 집으로 카드가 날라온다고 하니, 기다리면 된다.

Canada Place 근처에 도서관도 있는데 가서 둘러보는 것도 좋을듯. 무료인 English Conversation 클럽같은게 일주일에 한두번씩 있다는데, 나도 내일 가볼 예정이다.


흐.. 캐나다 건물들은 몬가 엣지있어.. 여튼 붉은색 건물이다.

3. 휴대폰 (여기선 셀이라고 하는듯..)

Fido나 Telus같은게 있다. 에드먼튼 시티 센터(쇼핑몰?)에 2층에서 했다. 다른덴 어디에서 하는지 잘 모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2년 계약하면 뭐 더 싸고, 가입비도 없고, 심카드도 물론 공짜고, 핸드폰도 무료로 준다고 어쩌고 하는데 나는 호주에서 쓰던 폰을 가지고 간 터라 month & month로 한다고 했다. 심카드 바꿔서 테스트 해보니 언락이라고 해서 심카드 구입하고(10불), 가입비 내고(35불), 한달에 25불인 요금제를 선택했다.

청구서는 메일로 받겠다고 했는데, 우편은 무려 2불이란다. 미쳤음. 여튼 그거 출력해서 갖고 은행가서 내거나 Fido에 직접 가서 카드 결제해도 된다고 이해했다. 신용카드가 필요하던데, 난 한국에서 쓰던게 있어서 그걸로 했는데 신용카드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와 엄청 불친절 -_-)

주소가 적힌 종이(드디어!!)를 받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뒤 한층 올라가서 Accuserch였던가, 헬스케어를 하러 간다.

4. 알버타 보험

핸드폰을 마련한 건물, 에드먼튼 시티 센터 3층으로 가면 에스컬레이터 바로 근처에 AccuSerch로 간다. 신넘버 받을 때 아저씨가 여기가서 보험 들면 된다고 해서 왔다. 줄서서 헬쓰 케어 신청하러 왔다고 말하면 신청서를 주는데, 알버타에 사는게 아니라 1년만 커버하면 되는 워홀러 이므로 주민등록증 같은거 필요없다. 아까 얘기한 a piece of mail to prove your residency..... 이게 여기에서 쓰인다. 휴대폰 할 때 받은 종이나 신넘버 적힌 레터같은거 보여주고 신청서 작성해서 여권이랑 주면 5 - 10일 정도 뒤에 메일 받을거라고 얘기하고 끝.

가장 걱정했던 게 보험드는거였는데, 뭐 register할 때는 쉽다.;; 앞으로 메일에 뭐 어떤게 적혀있을진 모르겠지만;;



사실 어려울 거 하나 없을 것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경험담 하나 읽어보고 가면 괜히 든든하지 않나. 근데 에드먼튼에 온 워홀러들의 경험담을 찾을 수가 없는거다. ㅠㅠ 에드먼튼에 올 워홀러들에게 큰 보물까진 아니어도 큐빅정도의 정보제공은 되겠지. ㅎㅎㅎ

핸드폰을 제일 먼저하는게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보험은 맨 마지막으로 하는게 좋을듯?

사실 정보 제공은 내 전공이 아니라 뭐, 사진도 없고 좀 많이.. 불친절 한 포스팅인 것 안다. 그러니 만약 에드먼튼에 올 계획이 있거나 이미 오신 분들이 혹여나 여기에 들러서 이 포스팅을 보고 궁금한게 있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의문을 제기해 주시길.

크.. 구름봐라 구름봐. 여기 건물들이 이쁜건 저 파랑 하늘이 그대로 건물에 담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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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보기엔 결혼할 나이, 뭐 솔까말 늙수그레해가지고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설치니 부모님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출국 전날까지도 엄마는 울고, 아빠는 분노게이지 급상승하며 열띤 토론의 장....을 벌였을 정도이니 뭐, 말 다했지.

그럼에도 어째저째 출발했다.

당당하게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출발한 것 치고는 비행기에서는 미친듯 심란해져서 지금 도대체 나 뭐하고 있는건가, 여긴 어디인가, 하면서 결국 경유하는 대만 공항에서는 울음까지 터뜨렸다. 아, 심약한 것... 다시 탄 비행기에서는 잠을 깨면 집에서 눈떴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하면서 내내 잤는데, 눈 뜨니 밴쿠버였다.

아, 이 외국냄새!! 그리웠다!! 왜 그렇게도 한국을 뜨길 염원했는지 다시 조금 알 것 같았다.

Tip1. immigration 수속을 밟는데 엄청 오래 걸리므로 짐을 먼저 찾는게 좋다.

나 때만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수속 하는데 거의 3시간... 정도 걸렸다. 내 앞에 몇몇 워홀러인듯한 한국남자들도 있었는데 훈남이 아니어서 열몇시간 비행한 후라 내 몰골이 너무 귀신같아서 말걸면 무서워할까봐, 내내 로스트만 봤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지겨워. ㅠㅠ

여튼, 나는 뭣도 모르고 바로 수속하러 갔다가 잠시 뒷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짐을 찾으러 갔다가 왔는데 미리 찾아 두면 괜히 초조해하지 않고 좋겠죠.

Tip2. 밴쿠버 공항에는 CDS 라고 짐 맡기는 곳이 있다.

짐 찾고 나와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가면 CDS라고 짐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난 밴쿠버에는 5일만 놀고 에드먼튼으로 올라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2개나 되는 캐리어가 처치곤란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이 무거운거 두개 다 들고 밤 11시 넘어서 다운타운을 누빌 생각을 하면 암담..

돈이면 다 된다. 짐 2개를 5일동안 맡기는데 총 40불. 처음에 11불인가 내고 짐 찾을 때 30불 더 냈다. 계산해보면 짐 하나당 4불 정도 하나보다.

Tip3. Samesun Backpacker Lodge.

처음에 돈 많이 들고 럭셔리한 호텔 갈 생각으로 밴쿠버에 오는 워홀러는 없을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추천하는 이곳! Samesun Backpacker Lodge. 밴쿠버 시티 센터 역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쭉 따라 내려오다보면 있다. 처음에 백패커 알아볼 때 정보가 너무 없어서 당황했었다. 도대체 여행하는 사람들 어디에서 자는거야 ㅠㅠ

난 4인실이었는데 침대는 불편하고, 화장실은 공용이다. 아침식사는 형편없고. 허나 하루 28불에 이 정도로 깨끗하고, 친절하고, 넓은데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있으면 추천좀. Granvill St.가 좀 위험하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깨끗하고 좋기만 하던데. 싸고 맛난 맛집도 많고. 바로 앞쪽에 Pita Pit 은 서브웨이 같은 곳인데 또띠아 같은거에 이것저것 많이 넣어 먹는건데 하나 먹으면 배 터진다. 야채는 넣고 싶은대로 다 넣을 수 있고 소스도 마찬가지. ㅎㅎ 그리고 근처에 피자집 중에 Romania 피자인가, 거기가 근방 피자집 중에 가장 나은데라고 한다. 

근처에 클럽이 많아서 밤에 술취한 외국인들이 돌아다니는데 별로 해치지 않더라.

유감스럽게도 사진은 없다. 실은 별로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도미토리, 적당하게 단기간 지낼만한 곳을 찾는다면 괜춘. 덧붙이자면, 룸메이트가 섹스할 때 침고이는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도 괜춘. 이건 짜증이 문제가 아니라 삼켜도 삼켜도 계속 고이는 내 침이 문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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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짬이 나서 음악어쩌고 하는 방송을 보고 있다.
똑같아 보인다.

그 와중에 꼭 멋진 애들이 있다. 비스트의 세호는..(세호는 지붕킥의 세호겠지) 진짜 멋있네. 우와, 우와...
요즘 자꾸 연예인이 멋있어서 왜이렇게 요샌 멋있는 애들이 많은거야! 라고 했더니 동생이 늙었단다.. 그런가.


이런 저런 이별을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친구라기엔 각별하고 연인이라기엔 너무 먼 사람과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그는 유행하는 신발을 신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왔다. 하지만 세월과 밥벌이의 표독스러움이 그를 비껴가지 못한듯 하여 안쓰러웠다.

인사동 어느 갤러리 5층의 발코니의 바람은 시원했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과 이곳에 앉아 시덥잖은 농담따먹기를 했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 말을 함으로써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나를 그 중의 하나로 만들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과는 달리 기분 좋은 대화들이 오갔고, 그만큼 우울한 침묵도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책에 써준 글귀를 지금도 자꾸 쓰다듬어본다. 표류하는 '청춘' 을 의도했다는데 표류하는 '인생'으로 잘못적어서 주는 바람에 난 내 인생이 평생동안 바람따라 표류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나쁜놈.

헤어질 무렵엔 마음이 초조해져서 언제나처럼 캐나다 가지 말고 시집오라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쳐주지 못했다.
'정말 안가도 너 나 안만나줄거잖아.' 라는 식으로 정색을 해버린 나는 때려주고 싶을만큼 찌질했다.

우린 다음번을 기약하지도 않았다. 될대로 되라지. 어차피 그는 내 일상도 아니었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지도 않는, 어설픈 포옹보다는 차라리 그의 말대로 한 대 힘껏 패버리고 올걸.


몇 년이나 걸릴까.
난 신데렐라 언니에서 본 것처럼 8년을 얘기했고, 그는 8년이 너무 길다고 얘기했다. 아무렴.
허나 난 8년이든, 18년이든, 설령 8개월이든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그는 많이 변해갈테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만은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변하지 않길 고대할 것이다.

이 마음이 뭔진 잘 모르겠다. 그의 마음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이게 사랑인지 우정인지 어떤 종류의 애정인지 이젠 상관없다. 난 그를 놓아버렸다.
'한동안' 이라고 믿고 싶다.

역시 내 인생의 초점은 인간관계에 맞춰져 있는 것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는 이곳엔 잘 안오게 되더라. 웃긴게, 오가는 사람이 없는 이곳을 창조한 것도 나인데. ㅎㅎㅎ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허세부리는 나의 모습이다.

나 자신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의 나라는 걸 인정 못하고

자꾸 옛날엔 어땠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네, 돈을 얼마를 모았네, 영어를 얼마나 하네, 앞으로는 어떻게 할거네, 학교는 어디를 나왔네, 내가 사실은 굉장히 지적인 사람입네(실제로 이런 말을 하진 않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언제나 갖고 있다;;) 하며 지껄이는 허세부리는 내 모습을 문득 발견할 때는 자기혐오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아, 진심 최악이다.

조금 더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나란 인간은 떠받들어 주는 것에만 익숙해서 만약 옛날 옛적 왕에 비유한다면 간신들의 아첨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충신을 참수하는 그런 왕이 아니었을까 ㅋㅋㅋ

처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나이가 어려도 배울 것이 분명 많을 것이므로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존대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것이고, 이것은 무척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자부했다.

허나...

잔소리꾼 어린이는 정말 싫다......................

어린이에게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 이렇게 더러울 줄이야!!! 허세덩어리인 내가 이걸 어떻게 참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 돈이 몇푼이든, 돈벌이는 모두 지겹고 힘들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질량은 저울에 재보면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과 부모님께는 내가 무척 행복하고, 일이 재미있고, 여유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늘어나서 좋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고 있다. 참 부끄럽게도. 그렇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에는 투덜투덜 투덜이스머프 이미지가 될까봐 싫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시 목적은 '허세'에 있다. ㅎㅎㅎㅎㅎㅎㅎ



개인적으로 귀족의 생활을 동경하는데 (맨날 하는 품위 드립 참조)
내가 일하는 동네는 부자들이 많은 동네다. 유전미인이라고.. 손님들 중에는 스튜어디스들도 많고, 예쁜 아줌마들도 많고, 이쁜 외국인들도많다. 모피 입은 아줌마들과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지껄이는 초딩들.. 그 대화를 모두 받아주는 수준의 부모들.

친구들이 시집 잘 가는 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그것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비웃을 망정 조금이라도 내 목표를 비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본으로부터 비롯한 그들의 품위 있는 생활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은 나의 꿈에 대한 대단하신 신조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등바등 살 필요 없이, 돈 많은 남자 만나서, 한가로이 대낮에 아줌마들이랑 커피마시며 우리애 교육이 어쩌고 수다 떨고, 주말엔 남편이랑 애 데리고 와서 빵이랑 생과일 쥬스 사주며 집 앞 길을 산책하고, 거품이 가득한 목소리로 카푸취노 쥬세요, 시나몬 좋쥐요오~ 라고 주문 하는 삶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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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에서

Posted 2010. 2. 2. 11:48

인도의 푸쉬카르는 델리에서 기차로 7시간만 이동하면 되는 가까운 곳입니다. 인도를 가본 사람이라면 모두 입을모아 말하는 것이 단 7시간 거리의 도시라도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대도시인 델리와는 달리 푸쉬카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분위기가 정말 현격하게 달랐는데요, 대단히 엄격한 성지여서(뭐 3대 성지라나 그렇다네요.) 육식은 물론 술 반입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던 제가 채식에 적응했음에도 그 좋던 푸쉬카르에 사흘밖에 머물지 않은 것은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푸쉬카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가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아주 귀엽게 생긴 남자애였습니다. 동정심이 물넘치듯 흘러서 바닥에서 자는 인도 꼬마아이를 보고는 선뜻 자기의 침대칸을 내어줍니다. 그러곤 자기가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잤어요. 간밤에 쥐를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그 기세에 놀란 제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어찌나 신나게 하는지 전 서양아이가 바닥에서 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까먹을 뻔 했습니다. 

인도인을 좋아하지만, 인도인과의 돈문제에 대해서는 까다로웠던 저와 약간 부딪치기도 했는데, 함께 사기를 당하고서는 그제서야 이럴 줄 몰랐다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요. 재밌는 것은 매번 믿고, 매번 사기를 당하는데, 그럴 때마다 처음이라는 듯이 놀라는 겁니다. 좋은 친구와 함께 푸쉬카르가 다 내다보이는 성 꼭대기에 올라가 맨발벗고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하시시를 담배에 섞어서 피우는데 바람이 살랑 불면 참 그만한 기분이 또 없더군요.
 
친구의 이름은 정말 신기하게도 하수스, 영문으로는 Jesus였습니다. 일정이 달라서 푸쉬카르에서만 함께 다녔었는데도, 아직도 많이 생각나는 친구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필름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다녔다는 겁니다. 그나마 있던 50미리 렌즈(MF였지요;)가 고장나있는줄도 모르고, 초점이 어긋난 채로 계속 찍은 것들이니 아쉬운 사진이 많아요. 요즘 좋은 카메라들이 많이 나와서 깨끗하게 나온 사진들을 보면 제 사진이 초라해지는 것 같습니다. ㅎㅎ 먼지도 무척 많아서 흐릿한 사진에 일조했어요. 

푸쉬카르는 다양한 수공예 악세사리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악세사리와 다양한 색깔에 정신을 못차리는 전 하루 생활비만큼의 쇼핑을 해대곤 했는데요; 노랑꽃 원피스와 구슬 목걸이, 알록달록 실귀걸이, 실+구슬 목걸이, 초록색 티셔츠, 주황색 바지 등등 정신을 못차리고 사댔습니다. 가격도 싸고, 촌스럽고 화려한 옷을 마음놓고 입고 다닐 수 있을 때가 여행할 때 말곤 별로 없으니까요. 



종종 인생의 목적, 여행의 목적, 독서의 목적이 무엇이냐, 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언제고 머뭇거리는데, 별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좋으니까 하는거죠. 그래서 많은 도시를 단기간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그저 이리저리 둘러보고 목적의식 없이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푸쉬카르에 있는 수많은 성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건물은 어떤 양식인지, 그 도시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좀 더 많이 알고갔으면 많이 배웠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지만, 만약 다음에 또 푸쉬카르에 가게 된다고 해도, 마을의 왠지모를 경건한 분위기를 즐길 뿐, 뭔가 더 알아보거나,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 낙타사파리는 동부 끝자락에 있는 자이살메르나 쿠리에서 많이 한다고 해요. 다녀오신 어떤 분들은 별이 태양만하다고 하더라구요. 짧은 일정에, 게으른 저와 친구는 푸쉬카르에서 1박 2일 낙타사파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에게 걸려들어서 낙타를 타기로 합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저 엄청나게 큰 낙타를 타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낙타는 다리가 무척 깁니다. 그래서 앉아 있는 낙타 위에 올라타야 하는데요, 낙타가 앞다리인지 뒷다리를 먼저 펴면 몸이 급격하게 기우는데, 심장이 덜컹할 정도로 무섭더군요. 떨어지면 끝장. ㄷㄷㄷ


낙타를 타곤, 당황스러워보이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낙타가 아프다는 듯이 끼힝힝(?)거리면서 계속 울어서, 제가 너무 무겁나보다고 놀렸거든요. 사막이라기보다는 황무지에 가까운 푸쉬카르 변두리의 마을로 갑니다. 그 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을 닮은 장사꾼의 집에 가서 추위를 달래기 위해 모닥불 앞에서 깔깔이와 스키보드복으로 무장하고는 몰래 공수해온 맥주도 마시고, 너무 착한 아주머니와 할아버지가 해주는 밥도 먹고 놀았습니다.

관광객은 하루만 머물고 떠나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나는 관광객일 뿐인 제 손이 차다며 꼭 잡아주고, 많이 먹으라고 난도 많이 만들어주고, 코리엔더도 팍팍 뿌려주고(-_-), 아무 가식 없이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와 전 그저 행복해서 감동에 감탄을 하며 좋아했는데요, 장사꾼이 그럽니다. 10명 정도의 한국인 단체 손님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춥고 음식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며 환불해달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자기가 많이 상처받았다네요. 좀 더 큰 기대를 하고 왔다면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푸쉬카르는 낙타사파리로 유명한 곳이 아니고, 약간의 맛배기만 보는 정도일 것이라는 것, 낙타사파리를 할 때는 사막에서 자기 때문에 매우 춥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아주 저렴했거든요.

돌침대 위에 침낭을 펴고, 옷을 엄청나게 껴입고, 어둡고 추운 방 곳곳에 촛불을 켜놓고 신혼여행 분위기를 내며(여자끼리 참,,)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면서 불평은 커녕 잘만 놀다 모닥불 곁으로 온 우리는 조금 당황했어요.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길래, 선량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까. 한국 돈으로 하면 만원도 안되는 돈인데 말이죠.

인도에 도착한지 어느덧 보름이 지나갑니다.





빠이에서

Posted 2010. 1. 27. 13:17




빠이(Pai)는 태국의 북부에 있는 작은 소도시로,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가량 이동한다. 내가 갔던 날은 12월 30일인가 31일인가였는데, 태국사람들이 빠이에서 새해 첫 날 일출을 보는 것이 관례라는 걸 모르고 왔기 때문에 당연히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었다. 발품 파는 것은 물론이고, 호텔리스트를 보며 전화를 걸어 방이 있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일관되게 NO.

다행히도 나는 그 당시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밤 12시가 넘어서도 길거리에 나앉아 있어도 상관없었는데, 우리를 불쌍히 여긴 슈퍼 아주머니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즉석민박이라니, 정말 추억이잖아. +_+ 다음 날 일정의 사례비를 건네고 본격적으로 빠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나의 여행 패턴은 세월보내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별다른걸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던 이유는 그곳에서 로맨스가 싹텄기 때문이었는데.....

별다른 건 없다. 그저 도로를 걸을 때면 나를 안쪽에 밀어넣고 걷는다던가, 밤에 기침을 하니 약을 사다준다던가,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씌워준다던가, 그러곤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마을 곳곳을 쏘다닌다던가, 블랙잭을 가르쳐준다던가, 뭐 그런거. 사소한 것들. 
태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지름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동그란, 창호지로 만든 어떤 가벼운 물체를 열기구의 원리로 불을 지핀 후 하늘로 띄우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사진이 있었던가.. 못찾겠다 지금은.) 너무 다행히도 우리가 간 날이 12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 풍선 비스무리한 것을 띄우며 소원을 빌 수 있었다. 이 사람과 내년에도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뭐 이런 오글오글 한 것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판타스틱 장소보다도 빠이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저 푸르고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의 귀여운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땅콩가루가 뿌려진 팟타이나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고, 심심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한바퀴를 돌고, 밤이 되면 맥주 한캔씩 마시며 오두막에 앉아 별을 보던 그곳.




길가에는 코끼리가 그냥 막 지나다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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