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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0.11.17 템페스트 中

카메라가 없어서 더 좋은 밤.

Posted 2010. 12. 9. 17:36

눈길을 달려 집으로 향하는 버스, 하얀 눈 위에 진 회색 빛 나무 그림자, Art district를 향한 표지판, 공중전화박스의 외로운 불빛, 교회의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는 죄책감, 그 어떤 차도 없는 8차선 눈 쌓인 도로, 영하 12도의 추위 속에서 느끼던 따뜻함, 9층 높이의 아파트 입구에서 바라보는 조용한 도시의 전경.

모두가 오롯이 내것이었다. 오늘 밤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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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Posted 2010. 12. 6. 14:04



이사한다고/논다고 한동안 어느 곳에도 글을 쓰지 못했다. 짐 정리도 못한 채로 매일 저녁 놀러 나다녔다. 한 날은 영화 [하와이, 오슬로]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친구와 함께 봤다. 캐네디언 이지만 노르웨이 출신의 친구가 극찬을 하던데 나쁘지 않았다. 별 생각 없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 바빴는데, 마지막에 친구의 해석이 더 재미있었다. 여러 사람의 삶과 그만큼 여러 종류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비슷하지 않았고, 나를 그 누구에게도 대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영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와중에 이런 저런 우연과 인연이 겹쳐 한 친구와 새로 친해지게 됐다. 언제나 똑같은 나날들이라 생각하지만 되돌아보면 한국에서의 6개월보다 훨씬 더 스펙타클한 새로운 일들이 많았었는데, 이 친구와의 만남도 그 중 하나다. 한국에서 만났다면 달랐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건 참 신기해서, 인연인 관계라면 서로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정말로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딥 커넥티드란 말을 많이 쓰는데.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도 공허한 관계가 있는가하면 만난지 얼마 안됐더라도 이어진 끈이 단단하고 깊단 걸 느끼는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룸메에게 차가 있어서 쌀이나 김치걱정을 한 적이 없었는데, 독립(?)하면서 당장 쌀문제에 직면했다. 멀리 떨어진 몰에 쇼핑겸 중국마트에 쌀을 사러 배낭 메고 다녀왔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이 얘길 했더니 한국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검은 동남아 출신들의 노동자같다며 날 안쓰러워하셨다. 그런가. 뭐 다를 것도 없지. ㅎㅎㅎ 여튼 저녁은 밥과 함께 가지볶음을 해먹었는데 맛없었다. 하도 요리를 많이 해먹다 보니 웬만한 음식은 먹을만 한데, 이번 가지볶음 만큼은 완전 실패작. 이 곳 가지가 맛이 없는 것 같다. 보통 요리의 맛은 재료맛에 기반하니까;; 고기를 의식적으로 먹지 않다보니 야채 요리를 많이 해먹는데 가지요리는 다시는 해먹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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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Posted 2010. 11. 30. 16:35

1. 이번 주말 역시 빡세고 재밌고 미친 시간들을 보냈다. 오늘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시간을 보냈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더 심해지고, 12월부터는 하지 않을까란 작은 기대감도 갖고 있다.

2. 이사한다. 짐 싸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사실 짐 싸는 것보단 집 청소하는게 더 힘들었다. 짐은 대충 가방에 구겨넣었으니. 내일도 방 싹 정리해야 한다. 주말에 안놀고 이사준비 했었으면 시간이 좀 괜찮았을텐데, 뭘 하나 벼락치기 인생이라.

3. 이딴 잡소리들 왜 쓰고 있는 지 모르겠다. 끝.

4. Do you know what Thank you means?
    wtf. I wanna slap you lady.
술에 취해 걷는 밤거리에서 만난 인종차별년에게 싸대기를 날리고 싶었다. 싸우고 그랬으면 진짜 더 웃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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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Posted 2010. 11. 26. 17:16

I see you why you like him.
He seems the guy who takes you to around the world.

That is the most romantic description for my man I've heard.


사람이 다 똑같다. 자랑하고 싶어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어하고, 싫은 건 싫다고 티 팍팍 내고,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싶어한다.
취하면 숨기고 싶던 그 무언가가 도드라져 툭 튀어나와 버리는데, 그게 추하게 보일 때도 있고 이쁘게 보일 때도 있다.
오늘은 모두가 다 미웠다. 모두가 다 추했다.
다른 어떤 날은 또 아름답게 보이겠지.
나는 어떻게 보일까. 나는.
취하면 나 어떤 애인것 같아. 내 장점은 뭐야. 내 단점은 뭐야. 라고 수십번도 묻기도 했었다.
왜 확인받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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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Posted 2010. 11. 25. 16:22

1년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미친년이에요. 약먹어야 되요.
그리고. 그 전에는. 사람을 죽였어요. 그것도 가족을요.
그래서 약먹어야되요.
우리 가족은 테러리스트에요. 죽어도 싸요. 그래서. 내가 죽였어요.
잘했죠.


뺨에 손자국 났다.
되게 아프시겠다.

나. 힘이 없네요.

힘 없으면 제 팔 잡으세요.
병원 간 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 죽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구요.
있을 수 없는 일을 할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사람을 죽인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 겁니다.
저도 그런 적 있습니다.

죽였어요 내가. 
그래서. 아파요.


 어제 [아일랜드] 1,2편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봤다. 
사람을 죽였다는 좀 이상해보이는 여자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해줄 수가 있을까. 비록 책 읽듯이 연기하는 현빈이었지만 눈물을 그렁그렁 떨어뜨리는 이나영의 연기와 마음을 흔드는 대사에 혼을 놓아버렸다. 이나영이 꺽꺽거리면서 우는 장면에선, 나 역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있기에, 그러다가 화장 지워지겠다고 혼잣말 했던 적이 있기에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동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냉정하지도 않은 시선으로 아픈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무심한 듯한 따뜻함이 전해져 오는 드라마다.

이사 해야 하는데, 준비할 시간도 없이 또 놀 계획만 잔뜩이다.
퀴어비어파티, 해리포터 감상,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인디안 웨딩 파티를 여는 친구의 가짜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한 사리 구입 등등. 주말 내내 또 영어만 쓰면서 놀 생각 하니 마음이 갑갑해진다. ㅠㅠㅠㅠ
 
어젠 제프 골드블룸아저씨(ㅋㅋㅋㅋ)에게 늘상 만들어주듯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는데 손이 덜덜덜 떨리는거다. 미친 사춘기 틴에이져도 아니고 너무 순수하게 짝사랑하고 있다능 -_-; 아놔 진짜 자꾸 말하다보니 장난처럼 시작한 감정이 진심이 되는 것만 같다. 그 분만 오시면 긴장되서 심장이 막 뛰고 ㅋㅋㅋㅋㅋㅋ 진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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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Posted 2010. 11. 24. 15:38


연평도 사건 때문에 온 인터넷이 난리다. 여기서도 보스도 나 보자마자 노스코리아 얘기한다. 내가 걱정도 되고 좀 우울하다고 했더니 그래도 괜찮을 거라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땜에 바빠서 그 쪽에 신경 쓸 여력 없다며. 어차피 돈 바라고 공격한 거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한다. 확실히 레바논 출신이라 이런 얘기에 관심이 많은데, 기억력이 안좋은건지 나한테 노스나 사우스냐 백번 묻는다. 사우스라고 할 때마다 매번 안도. 미국쪽이면 괜찮다고. ㅋㅋ 괜찮긴. 오늘 술 사러 갔는데 아이디 확인하던 캐셔도 코리아 빅 프라블럼이라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크게 전쟁이 나거나 하진 않을거라고 했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그랬음 좋겠다고 한다.

여기 나와서 보면 제일 안전 불감증인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다.

다치거나 명을 달리한 어린 군인들이 무척 안쓰럽고, 여기 사람들한테는 가족들 걱정 많이 된다고 했는데 막상 엄마한테 전화하니 목소리 완전 밝다. 전쟁 이런 얘기 하나도 못하고 오늘 받은 소포 얘기만 둘다 들떠서 잔뜩 하곤 기분 좋게 끊음.

인델리 카레, 보드바지, 패딩, 코트, 수면바지, 수면양말, 그랑쉘(!!!!). 어그,,,, 참.. 이슬!!!!!! 소주가 왔다.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껴먹을지, 아님 한번에 다 마실지 고민고민. 동생이 까먹었다고 미안해하던 스페인어 교재까지 들어있었다. 흑흑 정말 엄마한테 잘해야지. ㅠㅠ 다 큰 딸이 효도는 못하고 맨날 부모님한테 받아먹기만 하니 뭐 이래.

내 인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거야. 라고 말하기엔 너무 받는게 많아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한국 돌아가면 한동안은 취업이나 할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생은 기니까 한 1~2년 더 부모님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다보면 금방 서른일텐데 싶기도 하고. 엄마가 엄청 신경써준 소포 받고 나서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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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Posted 2010. 11. 23. 16:48


사진 올릴 게 풍성해져서 좋다.

여행 중 이런저런 메모를 했는데, 괜히 멋찐 척 한 메모들이라 쓸모가 없다.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런지.

캐네디언 애들이랑 놀 때에 느끼는 이질감이랑 한국애들이랑 놀 때에 느끼는 이질감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어쨌든 혼자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 고립감은 애초에 극복이 안되는 종류의 감정인 듯 한데, 마찬가지로 토플도 애초에 시작이 안되는 종류의 공부일까봐 급 이중의 두려움이 몰려온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10~11시쯤 일어나 슬슬 준비해서 12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6시부터 12~2시까지 컴퓨터 하고 밥먹고 논다. 뭐하고 노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밥먹으면서 코난 에피 하나씩 보는게 하루 중 가장 설레이는거;

여행 내내 한국 가요를 들었다. 한국 가요를 듣지 않는 이유는 가사가 마음에 콕콕 박혀서 센치해지기 때문. 이번에 들은 노래 중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와 럼블피쉬의 '그대 내게 다시', 델리 스파이스의 '고백' 듣느라고 진짜 힘들어 죽는줄 알았다. 사랑 노래는 힘들어. 그나마 가장 위안이 되었던 노래는 다이나믹 듀오의 '솔로'. 자유다 널 사랑했던 내가 바보다 미련 없어 내 낙천주의는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다♬ 난 감정이입이 너무 쉬워서 문제기도 하지만 다행이기도 하다.

예전에 요거트 가게에서 일 할 때 앞에 있는 아베크롬비에서 자주 스무디 먹으러 오던 훈훈훈훈훈남이 있었는데, 그 훈훈훈훈훈남과 같이 일하던 친구와 연... 애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털. 썩. 계속 거기서 일했어야 했나! 그랬으면 그 훈훈훈훈훈남은 내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니겠지. 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 필요 없다.  왜냐면. 우리 까페에 자주 오는 손님들은 모두 근처 회사의 아저씨.아줌마, 혹은 근처 멘탈센터의 정신병자들인데 그 중 멋진 아저씨 단골 손님이 있어서 요새 상사병에 걸려 있다.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말을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너무 슬픈데 친구가 jeff goldblum in a tone you don't understand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군지 몰라서 검색해보니 진짜 닮았다 ㅋㅋㅋ 아 진짜 멋있음 ㅠㅠㅠㅠ

Jeff Goldblum 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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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인 윈터

Posted 2010. 11. 22. 16:13

주말동안 재스퍼와 밴프에 다녀왔다.
눈길 운전하느라 친구들이 고생이 많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난 나의 이기적이고 어린이같은 면모를 많이 발견하곤 놀랐는데,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던 것은 언제나 내 곁엔 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 특히 도드라졌던 이유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날 더 챙겨줬고, 사실상 내가 한 일이라곤 즐긴 일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다.

시끌벅적하게 놀며 재미있기도 했지만 차 타는 시간이 무척 많아서 생각할 시간도 많았는데, 일단 오늘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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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주제에 대박.

Posted 2010. 11. 18. 13:42
드래곤 길들이기
감독 딘 드블로와,크리스 샌더스 (2010 / 미국)
출연 제이 바루첼,제라드 버틀러,아메리카 페레라,크레이그 퍼거슨
상세보기


예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D로 보러 갔다가 예고편으로 이 영화를 봤는데 재밌겠다! 보자!보자! 하곤 그만 잊어버렸었는데, 며칠 전 친구가 나보고 [드래곤 길들이기]에 나온 주인공 공룡과 닮았다는........ 망언을 하며 영화 재밌다고 극찬을 하며 추천을 해주었다.

재밌겠다, 하면서 보기로 한 영화는 금방 까먹으면서 누군가가 추천을 해주는 영화는 보고야 마는 습성은 나보다 남을 더 믿는 데서 기인한 것일까? 그저 그런 영화도 누군가의 평가를 거치면 영화 자체로 보기 보다는 한 단계 옷이 입혀지는데 그게 영화 선정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방해가 되기 마련이어서 스포는 극도로 자제한다. 하지만 좋다는 영화는 왠만해서는 보고, 싫다는 영화는 왠만해서는 안본다. 반대로 인기가 많아져버린 영화는 또 보지 않는다. 미묘하면서도 까다로운 기준.


어쨌든 주인공 공룡인 투쓰리스는 전혀 나와 닮지 않았는데, 귀엽고 행동이 고양이랑 비슷해서 우리 나옹이생각이 많이 났다. 3년이나 키웠는데, 아빠가 털때문에 못견뎌하시다가 결국은 아는 집으로 보냈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도 모른다. 아마 죽었겠지. 라고 생각하는게 마음이 더 편한게.. 애가 너무 예민해서 다른 동물들이랑도 어울리지 못하고 낯선 사람은 당연히 못견뎌하고 음식도 많이 가렸어서. 여튼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뚝뚝 난다. 그 때 고양이 보내고 한달동안 부모님이랑 말도 안하고 애인이 나 맨날 우는거 달래준다고 고생이 많았었는데. 아직도 못벗어난 걸 보면 전애인이랑 추억은 앞으로 어떻게 극복하나 싶다.


투쓰리스와 히컵의 관계. 말도 안통하면서 서로 목숨걸고 지켜주려고 하는 거 보면서 눈물이 또 뚝뚝 나는 걸 보면 참 중요한게 언어나 계산같은게 아닌 것 같다. 사람들도 다 그걸 아니까 이런 줄거리에 열광하겠지. 말 없이도 통하는거. 그런게 진짜 아닌가. 진짜 속마음이 뭐든간에 그냥 통한다고 느끼는거. 나옹이가 나 별로 안좋아해서 내가 만지기만 해도 도망가곤 했는데, 혼자 울고있거나 그러면 항상 옆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곤 했었다. 매번. 마치 안다는 듯이.



히컵과 아빠의 관계. 이 둘은 말 때문에 부딪친다. 서로 말을 하는데 그게 자꾸 튕겨져 나오니까 애정이 비틀린다. 투쓰리스와 히컵의 관계와 대조적이어서 더 안타깝고, 반대로 이들의 우정은 더 빛난다.  나와 아빠의 관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나와 같지 않다면 인정해줄 수 없다는 아빠의 마음, 그럼에도 어떻게든 내 방식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결국은 '니가 자랑스럽다.'란 말로 둘의 관계는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진짜 회복은 그 말을 넘어선 진정에 있었다. 무뚝뚝한 아빠의 미안하단 말보다, 평생을 믿고 살아온 것을 포기하는 건 더욱 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던게, 해피엔딩같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거다. 히컵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드래곤들에게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나머지 간과할뻔 했는데 모험은 끝나고 구속만이 남았다. 히컵에게든, 드래곤에게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공동으로 무찔러야 할 적,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한사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언젠가는'이란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으니까.

템페스트 中

Posted 2010. 11. 17. 18:15
이 친구를 보니 위안이 되는군. 이자는 물에 빠져 죽을 신수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관상은 완전히 교수형감이거든. 운명의 여신이여. 이자를 교수대에 보내는 것을 고수하라. 그의 운명의 밧줄이 우리의 닻줄이 되도록 하여라. 우리 자신의 밧줄은 별 도움이 안되므로. 만약 그가 교수형을 당할 팔자가 아니라면 우리의 처지는 비참해지느니라. – 11쪽  
저자는 절대로 익사하지 않소. 비록 이 배는 호두 껍데기보다도 튼튼하지 못하고, 단단치 못한 처녀처럼 물이 새긴 해도. – 12쪽 
그 자는 역시 교살당할 운명이오. 바다 전체가 그렇지 않다며 아가리를 벌려 그 놈을 삼키려고 덤벼도 말이오. – 12쪽  
수만 길의 바다보다는 차라리 한 에이커의 메마른 땅이 더 좋겠다. 히스나 갈색 가시금작화가 자라는 불모지라도 좋다. 하늘에 계시는 신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하지만 난 육지에서 죽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13쪽

템페스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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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3페이지에 이르는 1막 1장을 읽었을 뿐인데 남겨두고 싶은 대사가 많다. 위에 인용해 둔 부분은 모두 곤잘로(정직한 노대신)의 대사. 폭풍때문에 배가 침몰할 상황에서 관상이 교수형 당할 상이라 안심이 된다니 재미있기도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건 재미를 넘어서서 인물에 대한 신뢰감을 자아낸다. 이 사람의 신념이 보통 신념의 단어에 따라오는 이성이 아니라 '운명'일지라 해도 말이다. 

이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면 나도 함께 믿어도 될 것 같은 느낌. 지금의 내가 폭풍에 휘말린 부서진 배 같은 상황이라도 운명의 여신이 그렇게 정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침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운명에 대한 믿음. 곤잘로가 믿는다면 나 역시도 믿는다. 운명이 날 이대로 침몰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자의 대사가 내 눈에 섬광처럼 콕콕 처박힌 이유는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인지도. 어쩌면 내 식대로 해석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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